혀차는 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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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단수

죽은 이와 대화는 말없는 속삭임 질문과 답이 오가지만 일방적인 자기중심이다.

버려져 잊힘에 속상하다 표현이고 길어지는 당부에 신세 한탄해주지 못한 미안함은 슬픈 이야

기다.

갑작스러운 상황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이내 현실임을 알고 마음의 빗장을 연다.

고맙다 감사하다가 인사고 친한 벗은 아니어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나 미운 소리에는 네가 옳다 장단을 맞춰주는 친절함이 경계심의 수위를 낮춰준다.

어떻게 해달라는 조심스럽게 꺼내지며 주고받자 무언의 약속이 담겨있다. 초라한 정성에 밝은 웃음을 지으며 겉치레 허세는 부끄럽다 고개를 숙인다.

땅에 묻히거나 한 줌의 재이거나 살아있는 정신은 인연의 끈이요,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오는 응원군임을 알자. 가족의 의미는 불교의 업이 아닌 필요에 의한 만남이었기에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찬 이는 재주에 비해 품성이 낙제점이다.

기분에 의한 결정은 앞뒤 순서가 없어 좋았던 시작은 골칫거리 다툼으로 이어진다.

부인은 학원을 운영하는데 자주 결근을 한단다. 서로가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충분히 이해할 대목에서도 부딪히고 싸운단다. 주먹질이 오가고 얼굴에 상처를 남겨 병원에 들락거리고 경찰서 출입이 잦다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몹쓸 교육자다.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다 덮어두지만 습관이자 버릇이다. 뭔가 궁금함을 남겼지만 괜한 오지랖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들어서 안내용이고 경조사를 나눌 친분은 아니었지만 이웃사촌 정으로 잠시 들렸는데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이다. 그러더니 선산이 있는데 거리도 멀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형태도 없단다. 다른 친척들도 나 몰라라 하는데 자기가 나설 이유도 없고 재정비를 하자면 경제적인 부담도 있어 이번 기회에 따로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시고 싶단다.

불쌍한 상황이지만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줄 수는 없지만 조상들의 영혼을 달래 끊고 맺음을 분명히 하면 앞으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다 하니 그렇게 해달란다.

이일로 가정이나 개인이 얼마나 편해질 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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