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풀꽃,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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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운  시조시인

텃밭을 가꾸다 보면 짜증이 날 정도로 나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자랄 만큼 자란 지금 이 시기가 딱 그렇다. 텃밭에 위풍당당 점령하는 놈들이다. 바로 풀, 잡초다.

잡초의 사전적 의미는‘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다.텃밭 잡초들을 제거하다 만난 놈이 하나 있었다. 조그마한 꽃이 앙증스럽게 피어 있었다. 그 줄기는 주변에 넓게 퍼져 있었다. 잡초인지 꽃인지 궁금하였기에 지인에게 사진을 보내고는 얼른 뽑아 버렸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텐데 이것 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 나훈아 노래 「잡초」가사 일부

잡초처럼 이름 없이 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이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기달맞이꽃이라고 한다. 그럼 괜히 뽑았네. 그대로 놔두고 가꾸어야 하는 것인데. 그저 꽃이 피는 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턱하게 붙은 꽃이라네요. 그것도 조금은 들었던 이름이어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잡초에서 풀꽃으로 당당히 옮겨간 것이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게 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나면 연인이 된다 / 아, 이것은 비밀. - 나태주 「풀꽃 2」전문

잡초라고 생각했다가 이름있는 풀꽃이라니 갑자기 애착이 간다.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오름을 오르다 주변 밭에서 다시금 이 녀석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깊숙이 다가가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체집하여 사과나무 아래에 심고 가꾸고 있다. 지인의 연락에는 꽃이름 뿐만 아니라 댓글 하나가 붙어 있었다.

고장 곱딱허게 피곡 검질 나는 거 막아 주는디

낭 아래 나시민 좋은디 밭디 나민 검질입주

텃밭 가운데 자리를 잡아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서 이름을 얻는 순간 대우는 달라진다. 필요한 곳에 있으면 적절한 대우를 받지만 엉뚱한 곳에 있으면 대우는커녕 찬밥 신세일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일부

넘쳐나는 잡초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뽑기도 하고 예초기로 흙먼지 날리도록 후려치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또 그 자리에 무성한 게 잡초다. 누군가는 제초제를 뿌려 제거하라고 하지만 내가 먹을거리를 키우는 텃밭인데 선뜻 제초제를 사용하기도 어렵다. 퇴직 후 소일거리로 시작한 텃밭 가꾸기다. 어떻게 살까? 하고 싶은 일 하고, 먹고 싶은 음식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면서 살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문뜩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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