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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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종일 지적이며 비 내리는 날이다. 한데도 나무만 보고 있으면 안에 고인 우울이 말갛게 갠다. 며칠 두고 하늘을 덮었던 음울한 구름 걷히듯 마음 둘레가 환하다.

나무의 무엇이 나를 밝게 하는가. 아파트 숲 그늘 평상에 앉아 고단한 일상을 잠시 주무른다고 숨 길게 내쉬었다 깊숙이 들이켠다. 어느새 엉덩이를 들이밀어 나무의 굵직한 줄기에 다가앉아 있다.

구실잣밤나무가 거목으로 드리운 그늘이 깊고 짙다. 20년 전, 아파트가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자리매김할 무렵 지은 곳이라, 그때 삽질한 아주 작은 나무가 그새 성목으로 숲을 장악하고 있을 테다. 그만그만한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 있는데도 졸들을 거느린 장수처럼 눈에 확 띄는 압도적 존재감이다.

나무의 생장이 탁월했다지만, 20년이란 짦지 않은 세월 동안 거느려 온 노역과 근기를 생각한다. 일 년이면 태풍이 서너 번씩 지나는 바람의 섬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세월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었던 뿌리의 힘. 그래서 그새 불타듯 이글거리던 햇살과 한밤의 긴 잠을 깨우던 이슬과 서리 그리고 적막한 달빛이 잔잔한 결로 일렁이던 어느 밤의 고요. 순일하게 눈 내려 덮이던 한겨울의 충만한 고독. 그것들과 엮이고 섞여 돋아난 가지 우거져 그늘로 덮인 수수만만 이파리. 그것들을 헤집고 지나는 따스한 바람으로 스미는 저들의 자유와 평화.

나는 이 첫 가을, 나무에 그만 끌리고 말았다.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 그늘을 머리에 이고 앉아 눈 감고 귀 닫아 내게 시 한 구절 내려 달라 기댄다. 목마르게, 숨 막히게 기다린다. 기다려도 내리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오리라. 끌림은 저와 나 사이 신뢰의 질긴 끈이 될 것이니.

나는 난을 좋아한다. 특히 한란 취향으로 몇 촉을 품었었다. 자그마치 30년, 그새 꽃도 많이 보았고 고아한 기품과 정결한 성정에 끌리기도 했다. 물주고 영양제를 꽂고 뿌리고 솜으로 잎새를 닦아 주며 행여 주인처럼 속화할세라 눈으로 어루만지며…. 그러다 지난해 시내로 이사 오며 살던 읍내의 좋은 사람에게 물려주고 왔다.

나보다 더 아끼리라 미더워 서슴지 않고 넘길 수 있어 기뻤다. 끌렸지만 내 난을 물려준 그가 내게 더 끌렸으니, 된 것이다. 이를테면 난과 마음을 바꾼 것, 물물교환(物物交換)이 아닌 물심교환(物心交換)이 됐다.

나는 개나 고양이보다 반려, 하면 식물이다. 밖에 서 있는 나무 중에 벗하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라, 수중에 넣어 키우는 분 재배 쪽을 택한다. 그중 한란인데, 내 생에 가장 활발하던 지난 30년을 지녔다 좋은 이에게 보냈으니, 이젠 마음으로 그리워하기로 한다.

유입종의 낯섦에 끌린다. 게발선인장과 안시리움. 게발선인장은 이사 올 때 이삿짐 차 올린 동네 아주머니 서른 해 정이 담긴 것이라 애지중지했더니, 그새 마디마디 게발처럼 돋아 가며 무성하다. 처음 핀 연분홍 꽃이 나를 사로잡았다. 두 번째 개화는 꽃이 무더기가 될 것이라 벌써부터 가슴 두근거린다.

안시리움은 내가 수필100인선에 뽑히자 축의로 사회복지법인 L 이사장에게서 보내온 것. 꽃이 피는 동안이 일 년 내내인가. 집에 와 일 년이 지나자 다시 꽃대를 올리더니 개화했다. 꽃인 듯 꽃 아닌 감색 불염포 빛깔이 하도 붉어 고혹한데, 또 긴 시간 거실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주 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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