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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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 수필가

마지막 한 줄을 마무리 못 해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서 끙끙거린다. 원고지 10매의 분량 중 마지막 한 줄이다.

글쓰기를 시작 한 지도 2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삶의 반성이며 내일의 고운 꿈을 위한 설계의 시간이다.

그동안 200자 원고지 열 장을 가득 써 본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자판기가 기분 좋게 리듬을 타는 날도 있었지만 몇 시간째 멍하니 있었던 날도 많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 삶의 고백인 듯하다. 진솔하기보다는 다양한 수식어로 부끄러운 삶의 이야기를 감추려 애썼던 시간이다.

백세 시대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사람의 일생을 원고지 열 장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난 지금 원고지 일곱 째 장의 중간에 있다. 누구든 출생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의 탄생과 성장기는 부모님의 영역 안에 있다. 내 지론대로라면 출생은 원고지 첫 장을 열어가는 이야기가 되겠다. 허나 아가의 고운 꿈을 펼쳐 갈 계획은 오직 부모의 몫이다.

작품 역시 작가의 보물 같은 자식이기에 부모의 마음으로 수많은 퇴고를 거쳐 세상에 태어난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 중 마음에 흡족하거나 부끄럽기도 한 작품들, 허나 모두 내가 낳았기에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어떤 세상을 펼쳐 보일까 하는 조심스런 한 걸음을 시작으로 두 번째 장부터는 다양한 삶의 꿈을 그려가는 도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로지 부모님의 몫이었던 나의 유년기는 곱게 펼쳐진 들판이었다. 고운 꽃들과 녹색의 향연이고 낭만 가득한 추억의 시간으로 자판기를 달리는 내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순간 멈춤이 시작되고 다양한 갈래 길에서 헤매기가 다반사였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달리다 방향을 잃어버린 시간 앞에서 늘 나는 망설였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독자들을 수필의 마력으로 빠져들게 할까를 고민하다 순간 깨달음 하나. 이제 녹록지 않았던 내 삶을 포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칠순의 중반에 있다.

어깨의 힘이 스르르 가벼워진다. 되돌아봄으로 또 다른 미래의 고운 꿈이 담겨있는 작품의 진가. 문득 내 원고지 마지막 장에 쓰여 질 삶의 마무리가 궁금해진다.

얼마 전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 주일에 미사 전 마당에서 인사를 드렸었는데 월요일 저녁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했다. 그날 신부님의 타고 계셨던 자가용은 족히 눈대중으로도 너무 낡아 십수 년이 넘어 보였다.

순간 십 년을 단위로 새 차로 바꾸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팔꿈치가 헤지고 무릎이 닳아진 옷을 입으셨어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셨던 분.

그분의 삶은 원고지 아홉 번째 장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한 줄을 미리 준비하셨던 듯 머뭇거림 없이 마침표를 찍으셨다.

그분의 마지막 한 줄은 애써 빛을 내려고도 드러내려고도 않았지만 구십을 잘 마무리 하신 숭고함이 담겨있다.

이십 대 젊은 나이에 한국으로 오시어 타국에서 당신의 사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들 마음속에 고운 여운을 두고 가셨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계신 모습으로 돌아가신 그분은 삶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컴퓨터 앞에서 애쓰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려고, 아님 나를 우아하게 포장하려고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시간.

글의 마무리가 자신의 몫이듯 내 삶의 마무리 또한 나의 몫이라는 조금은 기특한 생각이 든다.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하지만 되돌리고 싶었던 시간이 더 많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 한 줄은 한 방의 홈런이 아니라 길 위에서 헤맬 때 내가 선택했던 결과물이다. 원고지에 그려온 삶의 그림은 마지막 마무리에서 완성되리라. 원고지 분량에 연연해하지 말자. 열 장을 넘길 수 있음을 뿌듯해하지도 못 채워도 아쉬워하지 말자.

내 가족과 내 글을 읽어주는 지인들 중 최선을 다한 내 모습에 박수를 보내 줄 한 분만 있어도 감사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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