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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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어김없이 새벽이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새벽이지만 잠에서 일찍 깬 사람만이 누리는 고독과 마주한다. 미물들마저 잠들어 있는 새벽 정적이라니. 잠에서 깨어났다는 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어둠을 이겨내고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기에 새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새벽 산책길 농로엔 찬바람이 가득하다. 이제 곧 한로(寒露)라 밤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가을도 깊어지리라. 동녘이 희끄무레 밝아오면서 즐비하게 늘어선 타운하우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풍년을 기약하던 추곡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을은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이기에 추곡이 사라진 제주 들녘이 나를 슬프게 한다.

시월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시월에 농촌 들녘에서 울리는 풍년가는 들을 수 없다손 치더라도 예술가들이 펼치는 문화예술 향연에서나마 풍년가가 온 섬에 널리 퍼져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의 달 시월이 열리며 우당도서관이 이미 문화예술행사의 서막을 열었다. ‘, ᄒᆞᆫ디 어울령을 주제로 3일간 펼쳐졌던 독서대전의 바람이 이제 제60회 탐라문화제로 이어지면서 들불처럼 온 섬을 불태울 것이다. 불볕더위를 이겨내며 준비한 탐라문화제가 전염병 창궐로 지칠 대로 지친 도민들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거대한 문화예술 잔치 탐라문화제가 중순까지 이어지고 시월 하순엔 제주문학관도 개관하면서 문화예술의 향연은 절정을 맞이할 것이다. 제주 문학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도민들 곁으로 다가온 제주문학관이 일부 문인들만 누리는 공간이 아닌 진정 도민들이 향유하고 즐기는 예술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문화의 달 시월이다. 하지만 이제 왜 문화의 달을 시월로 정해 놓고 시월에만 문화를 향유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에서 언제 어디서나 향유되고 감동으로 피어나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21세기 삶은 문화예술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3차원 가상세계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도 문화예술과 융합되어야만 진정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랜 가을장마와 태풍으로 계절이 실종된 듯하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쾌청하기만 하다. 양전형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낙엽과 함께 어디선가 영혼이 갉히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고 전염병 창궐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오고 가는 자연의 섭리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시월이 열리면서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 속으로 침잠하게 되니 마음은 어느새 가을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설레며 꿈을 찾아 좇던 청년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이 시월에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찾아 새로운 삶의 의미를 되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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