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斷想(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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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수 수필가

추석을 하루 앞둔 팔월 열나흘 저녁이다. 예전 같으면 멀리서 온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차례 음식 만드는 손놀림으로 시끌벅적할 시간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오지 말라는 뜻을 일찌감치 아들, 며느리들한테 전했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심성들이라 안부 전화로만 가름하기로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섭섭한 마음이 잠시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환기나 할 요량으로 남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보다 먼저 밝은 달빛이 확 달려든다. 이웃집들 사이의 버름한 틈새로 둥근달이 하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반갑지 않은 가을장마가 지나고 또 간간이 가을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명쾌해졌다.

지난여름은 참 더웠었다. 기온계의 붉은 기둥은 내려올 줄 모르고 체력과 인내심이 한계점을 넘어설 즈음, 기어이 가을이 찾아 들었다.

, 얼마 만인가. 이렇게 밝은 달빛을 머리 가득 뒤집어 써본 게.’

아련하게 흘러간 세월의 흔적 속에는 달밤과 달빛에 관한 기억들이 남아있다. 달빛에 실려 오는 바람결 따라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영혼이 기지개를 켜며 되살아난다.

달 달 무슨 달/ 낮과 같이 밝은 달/

어디 어디 비추나/ 우리 동네 비추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선생님과 같이 부르던 동요의 한 부분이다. 윤석중 선생이 쓴 노랫말이다.

어린이들이 손잡고 놀이하는 머리 위로 대낮같이 밝은 달이 떠 있었다. 어제 본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매연, 공해, 미세 먼지라는 말들은 들어보지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안 큰 길이나 모래 동산도 좋은 놀이터였다. 달빛 속에서 밤 깊은 줄 모르고 같이 놀던 옛 친구들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중학교 3학년 초여름 무렵, 유채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밭으로 가서 어머니와 임무 교대를 했다. 어머니는 저녁을 지으러 집에 가시고 나는 밭에 남아 마차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는 사이에 둥근 달이 떠올랐지만 무서움이 엄습해 왔다. 짚 더미를 뒤집어쓰고 웅크린 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인기척에 놀라 일어나보니 어머니가 앞에 서 계셨다. 마차 일을 하시는 분이 다쳐서 못 오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이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그 유채를 지키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초임 교사 시절, 달밤이면 가끔 학교 운동장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별자리 공부 현장학습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길게 흐르는 은하수와 교과서에 나온 별자리 몇 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옥토끼와 계수나무.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선장이 한 말이다. 1969720일 수천 년간 우리 인류에게 신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달이 과학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들어와 버린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며 경축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섭섭함이 한동안 도사려 있었다.

면 소재지의 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직원 회식이 파하고 헤어지다 말고 한 선배님의 제안에 따라 2차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장소는 달빛이 은은히 흐르는 바닷가 모래 언덕이었다. 대여섯이 둘러앉자 선배 선생님이 술을 따르면서 한 말씀을 하셨다.

여보게들, 이런 밤에 집구석에 박혀 있으면 뭘 하냐. , 한잔,”

그때였다.

손들어, 당신들은 완전 포위됐어, 움직이면 쏜다.”

철거덕 거리는 금속성을 내며 한 사나이가 총을 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몇 명의 군인들이 엎드려 쏴자세로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긴장감이 주변을 휘감았다.

, 학교 선생님들이 아니십니까?”

그 밤의 2차 술자리는 해안 경비초소에 근무 중인 방위병 위문 파티가 되고 말았었다.

경비 근무 중 이상 없음

어느새 달은 옆집 지붕 너머로 숨어들고 있다. 내일은 한가위, 더 크고 밝은 빛을 안고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만 허공으로 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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