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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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화창 서늘한 아침이었다. 신문을 가지러 현관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나보다 키가 큰 나무에서 화사한 꽃 두 송이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며 우아하고 화려한 미소를 환히 내뱉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 꽃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모야모이 꽃 이름이 뭐예요?” 하고 올렸다. 20여 분 후에 답장이 왔다. ‘닥풀이란다. 한 해 살이 풀꽃이란다.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한 꽃 치고는 이름이 무척 수수 담백했다.

지난해 여름 올레길을 걷다가 들판 잡초 더미 사이에 한 없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 무덤을 보았다. 다시 가을에 그곳을 지나다 맺혀있는 씨앗을 조금 가져다 올봄에 육묘 상자에 파종했다. 배추씨보다 더 작은 씨앗에서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했다. 비에 씻기거나 바람에 날아간 것들이 많았지만 묘종 몇 개가 자라자 화분에 옮겨 심었다.

다섯 개의 화분에 한두 포기씩 나누어 키웠다. 거의 6개월 동안 나름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집사람이 제법 잎이 형성되고 키도 자라기 시작하자 무슨 꽃이냐고 물었으나 나도 알 수 없었다. 집사람은 부용 같다고 한다. 꽃이라도 피었으면 인터넷에 알려서 물어보면 좋으련만 나는 그냥 아주 크고 아름다운 노란 꽃이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꽃을 보았고 이름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손바닥처럼 널찍한 잎이 자라다가 나중에는 6, 7갈레로 나누어지고 키는 거의 1m50정도가 되었다. 매일 물을 주고 비바람 예보가 있으면 안채로 옮겼다. 지지대를 심어 묶어주고 하던 보람을 이제 보게 되었다.

어쩌다가 무척이나 촌스러운 닥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녀도 우아하고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 황촉규, 당황, 촉규, 촉귀라고도 한다. 전체에 노란 털이 있다. 줄기는 둥근 기둥 모양이고 곧게 서며, 가지를 치지 않아 대나무처럼 한 줄기만 자란다. 잎을 황촉규엽(黃蜀葵葉), 꽃을 황촉규화(黃蜀葵花), 씨를 황촉규자(黃蜀葵子)라고 한다. 관상용, 섬유재, 제지용, 식용, 약용으로 이용된다고 하니 알고 보면 팔박미인이 따로 없어 보인다.

우리 선조들이 닥풀이라는 명칭을 붙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뿌리가 많은 점액질을 지니고 있어 닥나무로 한지를 뜨는 데 중요한 풀감이 된다. 특히 얇은 종이를 뜰 때 이 닥풀을 사용하면 쉽게 얇고도 균일한 종이를 뜰 수 있다고 한다.

엷은 황색의 꽃은 화판이 다섯 개다. 오목하게 들어간 가운데 부분은 검은 자주색이며 줄기 끝에 총상 꽃차례를 이루어 달렸다. 꽃 밑에 있는 작은 꽃턱 잎은 4~5개이고, 5개의 꽃잎이 팔랑개비처럼 서로 겹쳐지는데 꽃의 지름은 10~15이고 꽃잎에는 세로맥이 있다.

그런데 하루 지나서 다음 날 다시 보니 두 송이 피었던 꽃이 봉오리 때처럼 다시 말아 올라가 있었다. 하루 피고 져버린 것이다.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했던 연 노랑의 우아한 꽃의 생명이 겨우 한 나절이었다. 여섯 달을 치열하게 자라서 하루 만에 삶을 마감하고 있으니 차라리 하루살이 꽃이라고 해야 더 알맞을 것 같다. 온 힘을 다해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품격을 뽐냈던 그 여름날은 일장춘몽으로 너무도 허무했다.

그의 속살과 향기를 알고 싶어 찾아보니 역시 꽃말이 유혹이었다. 부용 같기도 하고 황무궁화 같기도 한 꽃, 양귀비보다 더 화려하고 우아한 꽃, 끈질기게 자라 화려하게 피었다 한나절만에 지는 꽃. 닥풀, 유혹의 유효기간이 하룻밤에 지나지 않다고 쉼 없이 교훈하는 당신이야 말로 꽃 중의 꽃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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