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약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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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인생본무답(人生本無答)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처음 만났을 땐 ‘인생은 본래 답이 없다’는 말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인생은 무진장의 답이 있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 세상엔 사라지는 것보다 생겨나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자고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의 무대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는 행복마을이다. 원시시대를 출발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치면서 고도로 발전해 온 것은 비단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두레문화, 그리고 수눌음(제주어)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려왔다. 이는 사람인(人)자가 서로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듯이 본래 우리 사람은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천부적인 운명처럼 안고 태어났다. 그 누구도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다.

오늘 얘기되는 스토리 역시 누군가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 번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분실(紛失)은 손실(損失)이다. 물건은 눈이 없기 때문에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저 끌고 가는 사람에게 끌려갈 뿐이다.

나는 며칠 전 광주에서 제주 내려오는 길에 빨간 약가방을 잃어 버렸다. 분명히 큰 가방은 등에 졌고 작은 약가방은 손에 들었던 것 같았는데 막상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선반에서 짐을 내리려는데 약가방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광주공항까지 픽업해준 지인에게 급히 전화로 가방 분실을 알렸다. 그는 곧 공항으로 나가보겠다고 하였다. 이어서 나는 광주공항 분실물관리소에 전화신고를 해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잃어버린 약가방이 광주공항 분실물관리소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허참 기가 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비행기 선반위에 있어야 할 약가방이 어떻게 광주공항에 있었단 말인가?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하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광주공항 대기실 벤치에 약가방을 놓고 깜빡 잊은 채 탑승을 했거나 아니면 광주공항 화장실 안의 옷걸이에 약가방을 걸어둔 채 나왔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어느 경우일지라도 누군가 양심있는 사람에 의해서 공항 분실물관리소에 맡겨졌을 터이다. 그 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돌이켜보면 이런 사태는 내게 너무나 잦은 것 같다. 수년 전부터 나의 건망증은 그 이력이 화려하다. 걸망과 지갑, 카메라와 여행가방, 반지와 손목시계,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부끄러울 정도로 분실의 전과자이다. 그때마다 정말 조심해야지 스스로 다짐도 하였고 맹세(盟誓)를 수없이 했건만 아직까지도 이 모양으로 도로아미타불이다. 물론 나이 탓으로 자위(自慰)도 해보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잃어버림과 잊음은 건망증의 부모 밑에 있는 형제간임에 틀림이 없다. 형과 아우가 서로 경쟁하듯이 분실 게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본다. 제발 정신 줄 놓지 말고 똑똑히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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