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열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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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러시아 서쪽에 유럽이 있고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중동 지방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유럽에 가까운 지역과 중동 지방 사이 넓은 지역’을 카프카스산맥이 차지하고 있어서 그 지역을 카프카스 지방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종교를 지닌 민족들이 오래전부터 카프카스 산맥 주변에 거주해왔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민족들이 1·2차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는 동안 갈등과 분쟁에 휩쓸리면서, 테러와 전쟁의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북카프카스는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해왔다. 체첸이나 잉구스가 북카프카스에 위치해 있다. 그들은 러시아 연방에 속한 공화국들인데, 최근까지도 기독교 선교가 어렵게 보였던 이슬람 지역이기도 하다.

한 10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잉구스의 어느 산골에서 한국 여권을 가진 중년여성 몇 사람이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통역자로 일했던 고려인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찾아갔는지 한국인 아줌마 몇 사람이 잉구스의 산골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에서 자세히 조사했는데 특별한 혐의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래서 다시는 러시아에 오지 못하도록 입국금지 판결을 내리면서 쫓아내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아줌마들이 거기서 열심히 부르던 노래는 한국 교회의 찬송가였다고 했다. 북카프카스의 이슬람공화국 산골에서 한국인 아줌마들이 열심히 찬송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짐작을 했다.

그들은 아마도 이슬람 선교를 위해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기도하다가, 어느날 러시아의 이슬람공화국을 찾아갔을 것이다. 충분한 여비나 안내인 없이 무작정 찾아갔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문화에서는 가능할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열심히 찬송을 부르던 그 산골은 테러리스트 캠프가 여기저기 설치된 아주 위험한 지역이었다. 러시아 선교지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이 너무 무분별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 어떤 선교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의 삶에서 무분별한 열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무분별한 열심이 없이는 새롭고 놀라운 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 해도 그것으로 인생과 역사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시시때때로 심각하게 다가오는 삶의 문제들은 상식적 판단과 노력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다. 인간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들은 합리적 판단보다는 열정과 희망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된다. 인공지능보다는 그런 무분별한 열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해가는 만큼 무분별한 열정과 신앙은 자취를 감추어 간다. 인공지능이 발달해가는 만큼 신앙과 희망은 힘을 잃어가는 것이요. 그만큼 우리 영혼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어떤 훌륭한 이데올로기나 논리적인 평등과 분배 이전에,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살려내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열어가는 근원적인 지혜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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