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지만
어설프지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읍내 조그만 집에 숲을 가꾸고 난을 키우며 서른 해를 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살았으니 나무와 풀에 빠져들 수밖에. 식물 취향인 데다 시골이란 환경이 인연이 됐을 것이다. 인과 연이 잘 맞아 어우러져 자연 인연과를 얻게 됐다. 푸나무를 심어 물주고 흙을 북돋우고 전지하는 식물 사랑의 장(場)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시골은 푸나무에게 최적의 삶을 선사했다. 햇빛과 이슬과 바람만으로 쑥쑥 자라 내가 손수 심은 것들이 나와 키를 견주더니 몇 년 새 지붕을 넘봤다. 특별한 구상 없이 수많은 그들을 심어 야산의 한 자락을 옮겨 놓은 것처럼 하자 한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뜰에 자연주의를 옮겨 놓고 싶었는데, 웬만큼 성공했다. 다가앉으면 품어 주는 것이 자연이었다.

낙엽수와 상록수, 교목과 관목의 교집합, 꽃 그리고 크고 작은 돌의 조합은 자체로 재구성의 묘리였다. 텃밭에 모종을 심어 푸성귀를 가꾼 데는, 작은 토양일지언정 거기 농부인 부모의 기억을 묻고 실었고,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정서가 깊숙이 스며 있었다.

해마다 새 가지를 내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목련과 석류나무와 모과나무는 잎이 지기를 기다려 가위질로 단장했다. 어릴 때 집 어귀 팽나무에 오르내리던 기본기가 내게 있었다. 큰 돌을 뒤덮던 푸른 넝쿨의 벋어가는 번무를 보며, 내 팔뚝의 근육도 꿈틀거렸다. 어느 해 태풍에 쓰러지다 휜 허리를 일으키느라 몇 년 지났는데도 끙끙대는 키 큰 종려나무의 깐질긴 생명력은 네게 외부에 저항하는 투사 기제(投射機制)를 일깨우곤 했었다.

한란 분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천연기념물로 진품만 가리며 키웠다. 물주고 영양제를 꽂아 주고 솜으로 잎을 닦아주며 지긋한 눈길로 어루만졌다. 그렇게 원하던 그들이 내 손안에 꽃으로 와 앉던 날의 황홀함은 생애를 두고 잊지 못한다. 분 하나에 구만리 장공을 유유히 날으던 선학 일곱 마리가 나래를 접고 있지 않은가. 그때 나는 며칠 동안 난실 깊이 앉아 무조건적 사랑을 경험했었다. 분별이 없어도 난 사랑은 지순했다.

연전 시내 도심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수종을 헤아리다 헷갈리게 다양한 그 뜰을 떠나왔다. 밖으로 나가면서도 마음에 품던 난들과도 헤어졌다.

아끼는 사람에게 내주고 난 몇 분을 가져왔더니. 아뿔싸, 우려했던 대로 아파트는 난을 배척했다. 숨을 놓으려 함에 그마저 차를 태워 보냈다. 믿어지지 않게 내겐 읍내 집에서 도탑게 정을 나눴던 푸나무라곤 한 그루, 한 포기도 없다.

길사에 받은 안시리움 분이 둘, 스승의 날에 받은 인삼팬더 한 분,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삿짐에 실려 보낸 게발선인장 한 분, 이것들을 가족으로 삼으려 한다.

사랑을 담뿍 베푼다. 화분이 고작 넷이지만, 성주 섬기듯 키우고 가꾸려 한다. 이즈음 내게 이 일이 본업이란 생각마저 든다. 거스르면 선대들 또한 농사가 업이었잖은가. 무릇 푸나무들도 가꾸다 보면 이들이 읽어야 할 경전이란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인간 못잖은 삶의 원리나 엄연한 도리가 쟁여 있는 탓이다.

도리를 엿보고 터득하는 일, 거기서 문자 경전 아닌 또 다른 경전을 읽게 된 것이다. 그렇다. 푸나무들도 다들 내면세계를 갖고 있다. 한동안 나는 이 경전 읽기게 골몰할 것 같다. 아마 그것이 내 여생의 업(業)이 될지도 모른다. 어설프지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