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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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임 수필가

매일 아침 수영장에 간다.

그곳은 회원 간의 나눔과 배려, 미덕이 넘치는 곳이다.

회원들은 커피 한 잔도 나눠마시고, 토속요리법이나 생활 상식, 몸으로 체득한 생활의 지혜나 건강에 유익한 정보도 공유한다.

어느 날이었다.

주고받던 대화 속에 우연히 십칠 년 전 아들 이야기가 들렸다.

뜻밖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내 아들과의 인연을 조심스레 입을 여는 그녀에게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는 아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사무실을 찾았는데, 뜻밖에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노라고.

그때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이제라도 내게 전한다며 애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17년 전,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들.

세월이 흐른 뒤지만 녀석이 베푼 선행을 듣게 되자 가슴이 아려

온다.

환하게 웃던 아들의 얼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지난날 생활고로 인하여 아이들은 에서 나는 섬에서 살았지만, 아들이 결혼하여 손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우리는 한 가족으로 살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도 아장걸음의 손주들 배웅에 발걸음이 가벼웠고, 귀가도 채송화처럼 방실거리는 아기들 표정에서 일상의 부대낌도 잊어버

렸다.

꿈결 같은 나날이었다.

겨울철이면 매년 열리던 겨울 바다 펭귄 수영대회를 나간 경험도 있었다.

어린 손주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아들은 바다에 입수한 어미를 향해 환호와 힘찬 박수를 보냈었다.

드디어 아들도 수영을 시작했다.

운동신경이 탁월한지라 영법대로 잘 터득한 모습을 지켜보면 흐뭇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찰나에 지나고 어스름 새벽 수영장 가는 길은 아들과 나의 생사의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자식을 여윈 것은 죄인이라고 했다.

그 후 아픔을 삼키며 수영을 접게 되었다.

어느 해 초가을 저만치서 어머니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나의 첫 작품이 실린 동인지를 품에 안고 달려오던 아들의 상기된 얼굴이 내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직장동료 가족들과 야유회 때 불렀던 노래 제목 천연 바위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 들었던 녀석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를 닮아서 저토록 성대의 성량이 풍부한가.

아들이 떠난 후에도 가수가 부르는 천연 바위를 들을 때마다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를 울적하게 한다.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이냐는.

창문 너머 바위섬을 바라볼 때면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결 따라 아들의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리는듯하여 가슴속 긴한 숨이 새어 나다.

항상 그리운 아들, 지금 어느 바위에서 영원을 잠재우고 있는지, 그날들의 추억들이 이 가을이면 마른 잎처럼 내 뜨락을 서성거린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심적 고통이 조금씩 사위여 가고 있을 때 사고 후유증이 점점 심해졌다.

육체도 자동차 수명대로 마모가 되듯이 나도 나이테가 두터워지자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났다.

20여 년의 오랜 공백이었지만 치유목적으로 다시 찾은 수영장에 들어서자 지난날 수영 회원이던 선배 언니들이 반겨주셨다.

무사 이제 오 멘제주 토박이의 구수한 사투리가 넘쳐나는 수영장에서 먹먹한 소식을 듣다니.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소복이 담아 보내왔다.

그녀의 고운 심성을 내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나는 속울음을 삼켰다.

펭귄 수영대회에서 어머니, 파이팅!”을 외치던 아들의 환호가 저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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