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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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마을 안 동서로 길게 연결된 중심도로를 한길이라 한다. 서쪽으로 들어서는 첫 사거리에는 양편으로 비석이 즐비하다. 김녕리는 유적으로 추측할 때 2500년 훨씬 이전에 설촌이 되었고 선사시대의 흔적도 있다. 행정체계가 정립된 것은 서기 1300년대이며, 당시에는 ‘천하대촌’이라고 불렀다는 큰 마을이다.

한길 따라 사거리가 여러 곳에 있다. 나름대로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그중 비석이 세워진 사거리를 일컬어 비석거리라고 한다. 선정을 베푼 관리와 효행을 귀감으로 삼아 후세에 전하고 이를 본받으라는 선조 님들의 깊은 뜻으로 세웠다.

세워진 연대가 다르니 글씨가 다르고 재료가 다르다. 매끄럽지 않은 자연석이라도 단단한 재료의 비석은 흔적이 남았지만, 여린 재료의 비석은 풍상에 마모되어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워지기 전에 복원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정비 5기와 효자비 2기가 예전 번화했던 거리의 영광을 간직했을 뿐, 거리는 침체되고 비석을 거들떠보는 이도 없다.

비석의 엄숙함도 모르고 말 타듯 타고 놀던 말썽꾸러기들이 희수 산수가 되어 백발이 성성한 요즈음에는 더욱 썰렁하다. 비석이 세워진 사거리만 초라해진 것은 아니다. 한 길 따라 사거리마다 즐비하던 점방이 하나둘 문을 닫더니 어느새 모두 문을 닫았다.

계란 하나 들고 가면 학용품과 사탕, 성냥 비누도 주던 점방 추억이 새롭다. 가까운 곳에 있는 팽나무 그늘에서 장기 두던 삼촌들은 세월이 모두 데려가 버렸고, 아기자기한 물품과 정감이 서린 점방은 마트가 모두 삼켜버렸다.

마을 안에 있는 평범한 팽나무도 100년 이상이면 마을의 전설과 옛일을 간직하고 있는 신목 대접을 받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물며 200년 이상 된 비석을 단순한 석물로 취급할 수 있을까. 어느 지도자도 선뜻 결단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해본다.

점점 퇴색되어 흉물화해가는 비석을 이설 보존하고 기존 자리는 정리를 함으로써 지역민이 건설적으로 이용할 때 좀 더 발전된 거리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확신에 무게를 실었다. 10월 초순의 새벽 5시는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둠과 밝음의 교대 준비를 하는 엄숙하고 조용한 시간이다.

비석 앞에 정성으로 제물을 차리고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잔을 올리고 마을 대표로서 축을 고했다. “비석거리 토지 지신께 고합니다. 그간 비석을 곱게 품어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마을회관 좋은 자리로 옮겨 정성으로 관리를 하겠습니다.” 동네 유지 두 분과 함께 절을 올리고 이설작업을 서둘렀다.

비석거리 역사와 문화의 흔적마저 지울 수가 없다. 장비가 빈약한 시절 선정과 효행을 기리고 후세의 본으로 삼으려고 온 힘을 다하여 세운 비석, 그리고 그 숭고한 정신을 어찌 잊겠는가. 정리하고 나서 표석을 세울 참이다. 지금까지 우리 마을의 사례를 기록했지만, 여느 마을에서도 행해졌거나 진행 중 또는 계획이 있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새마을운동으로 경제성장에 집착하다 보니 문화적 유산이 소외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살피는 일에 주민참여도 중요하지만, 행정에서부터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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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2021-10-27 10:33:10
김녕 비석거리~
방문지로 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