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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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화선지는 먹을 잘 빨아들이고 또 잘 번져야 한다. 예민한 종이다. 먹물이 번지는 정도를 고려해서 먹의 농담(濃淡)과의 관계를 잘 살펴 고르는 데 경험칙이 따라야 할 것이 화선지다. 스며들고 번지는 선염법(渲染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흡수력을 고려해 화조도는 흡수가 적은 것이, 산수화는 흡수가 잘되는 게 좋다고 한다.

바탕재에 물을 먼저 칠하고 마르기 전에 붓으로 번지듯 칠하는 게 선염법(渲染法)이다. 농담과 번짐 효과를 극대화해내는 기법이다. 색채의 농담과 깊이, 입체감이나 공간감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구름, 안개, 배, 번지는 달빛 등 자욱하고 물기를 머금은 듯한 풍경이나 몽롱한 환상적인 느낌을 나타낼 때 쓰는 기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화선지는 먹물을 빨아들이고 번지게 한다. 먹물은 화선지로 스미며 확장한다. 빠르게 느리게 넓게 좁게 굵고 가늘게 곧게 휘게 퍼지고 벋어나가며 화의(畫意)에 답한다. 붓을 잡은 손과의 호응이 예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먹물은 고여 있지 않고 스미고 번지고 빨려들며 파장을 일으킨다. 탄생을 위한 이 먹물의 파장은 절대 유효하다.

화선지 위에 남긴 흔적, 글씨 획 가장자리로 먹물이 약간 번진 묵훈(墨暈), 번짐의 여운은 분명 서예 대가가 이뤄낸 내공의 성과다. 파장이 너무 커도, 너무 미미해도 그 자취는 바닷가 모래 벌에 찍힌 물새 발자국에 불과할 것이다. 크든 작든 새의 발자국은 밀려오는 물결에 이내 지워지고 만다. 예술의 불후(不朽)한 생명력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쉼 없이 훨훨 날 듯 뛰며 내달린다. 뜨거운 피가 끓는다. 근육이 팔딱팔딱 꿈틀거린다. 세대의 특권이다. 걸음이 재빠르고 행동이 민활하다. 한마디 말에도 힘이 넘치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들의 두 눈은 반짝거리며 빛난다. 일하는 사람은 심신이 모두 발랄하다. 움직이며 노동하기 때문이다.

학식과 교양을 갖춘 이는 언제 보아도 얼굴에 화색이 돌고 온화하다. 몸에 배어 있는 덕이 얼굴에 나타난다. 안분지족이라 탐하지 않을 것이고, 탐하지 않으니 거침도 거리낌도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 살 것이다. 그러고도 신서(新書)를 구해 읽으며 서안을 받아 앉아 살아온 날의 서사를 물 흐르듯 풀어갈 것이다.

흔들리는 나무는 번성한다. 무수히 가지를 내고 풍성하게 잎을 달아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목표지향적인 행동 특성은 한자리에 붙박은 나무에게도 있다. 나무도 움직이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린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더욱 세차게 제 몸을 흔드는 것일지 모른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다. 나무는 흔드는 만큼 성장한다. 그리고 기어이 한 생을 완성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정체하면 도태된다. 변화가 없이는 생존을 이어 갈 수 없다.

확장이라 하면 보편적으로 그 방향성이 밖으로 향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외면적 의미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확장은 안쪽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처 채우지 못했던 내면으로의 확장이라든지, 그것의 깊이를 더해 가는 방식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세계 확장, 정중동에 가깝다.

확연히 눈에 들어오지는 않아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새로운 시도에 발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변화는 틀림없이 안팎으로 유효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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