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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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벚나무 이파리가 노랗게 그리고 발그레 가을의 깊이를 재고 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순간순간 제 몫의 빛을 발하는 중이다. 늦가을 상념에 잠긴 저녁, 육지에서 직장 다니는 딸이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기도 머쓱할 만큼 울상인 얼굴이다. 요즘 젊은이로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고 시대적 고민을 안고 사는 건 대견하다 할 일이지만 영문도 모른 채 듣기만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 내 미래가 막연하고 불확실하고.”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어 힘들어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속을 끓일 때가 있다. 자기 마음이 만들어 내는, 이러한 고통의 감정에 한번 빠지면 스스로가 그 무게에 짓눌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여 방황하기도 한다. 이 또한 자신의 신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즐겨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 ‘현재를 잡아라라고 해석되는 이 대사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장이다. 굳이 대사의 유래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격언인 듯, 좌우명인 듯 단어 자체가 친근감을 줄 정도로 익숙하다. 그만큼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마음의 여유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마음에 와 닿았다.

해안도로 방파제에 앉아 밤늦도록 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너 시간을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듣고 나서 몇 마디 거들었다. 중언부언 앞뒤 없는 대화법은 어쩔 수 없었음에도 편안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 쉽게 정리될 일이면 이렇게 달려오진 않았겠지만. 그리고 힘들 때면 가끔 읽는 시가 있다며 휴대폰을 보여준다. 딸이 고 3이었을 때 함께 걸었던 생태숲길를 배경으로 쓴 졸작이었다.

//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아이야 나무처럼일부.)

딸에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나를 알아차리는, 힘 있는 지혜로운 젊은이가 되길 바란다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걸 안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거기엔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을 테니까.

삶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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