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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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낙엽수가 많아선가. 소소리바람 한차례 지나더니 뜰 안이 고자누룩해졌다. 지지 않고 사각거리는 단풍나무 마른 잎 소리에 아파트 겨울 한낮이 스산하다. 겨우내 저렇게 가지에 달라붙을 것이다. 잎으로 생을 다하면 낙엽이 돼야 하는 이치를 저버린 것일까. 해마다 저러고 겨울을 난다. 질 때를 알아야 하거늘 늘 저러고 있으니 보기에 민망하다. 겨울이 깊어 가면 더 청승맞겠다.

겨울은 생명이 견뎌내야 하는 고난의 계절이다. 새파랗던 것들이 사그라들고 무성하던 것들은 전성기를 지나 헐벗는다.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천방지축 활개 치던 기운을 소진해 이젠 맥을 못 춘다. 다 내려놓아 있는 듯 없는 듯 은둔의 두꺼운 벽 속에 갇혀 버린다. 잠들어 늘어지게 긴긴 시간을 칩거하는 것들도 있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늦가을에 사냥해 포식한 뱃속이 든든하니 이겨내는 것이다. 살기 위해 애쓴 자에게 주어지는 휴식의 시간은 누려 온당하다.

하얗게 눈 내려 덮일 때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아잇적 별난 일이라 기억 속의 동영상처럼 선명하다. 온 천지가 하얀 오밤중, 우리 집 부엌에 찍어 놓은 노루 발자국. 한 마리였고, 냄새 맡고 겁먹은 눈망울로 뒤적이다 돌아선 게 분명했다. 가난한 집을 골랐다가 헛방 쳐 동네 누구네 집에서 곯은 배를 달래기는 했을까.

바람 자고 눈이 쏟아져 내리던 그 밤중의 무단 틈입자, 녀석은 적이 이십 리 설원을 걸어왔지 않은가. ‘아리랑’에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 그 거리가 4㎞, 걸어서 1시간이니 노루 녀석은 곱절로 이십 리니, 8㎞, 2시간 거리를 오갔다. 본 적 없던 짐승이지만 초식동물로 눈 초롱초롱한 녀석이라니 몹시 설레었다. 기척이 있었으면, 무말랭이라도 던져 주었을 것을.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이 나기 힘든 계절이다. 노루가 먼 눈길을 걸어 산에서 낯선 마을로 내린 것은 담대한 모험이었다. 생존의 욕구는 위험을 무릅쓴다. 겨울에는 나무들, 특히 낙엽수에 눈을 자주 보낸다. 떨구다 남은 잎 두셋 날 선 바람에 너덜대는 남루.

숲을 나와 몰풍스러운 바람과 폭설에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새들, 살기 위해 파닥이며 난다. 집 어귀에 앉아 까악 까르르 울던 어린 날의 까마귀 울음, 겨울엔 색다른 소리로 울어, 하늬바람 소리보다 쟁쟁하고 탱탱한 고음이었다.

겨울은 모질게 내성(耐性)에 기대어 간신히 나게 된다. 냉혹한 것 같지만 남에게 기대려 할 게 아니다. 설령 몸에 걸친 낡아빠진 옷가지로 거리에서 떨고 있어도 그렇다. 내게 손 내밀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아야 하리. 사람은 그 순간에 극도로 긴장한다. ‘나를 구원해야지.’ 자신을 꼿꼿이 세우고 손 놓고 있던 일의 현장으로 경주마같이 내달린다. 먼지를 털어 물레를 돌리듯 나태가 오래 방치해 뒀던 시간 위로 기름을 부어 일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다가온 이 겨울에 몸속 206개의 뼈대를 재가동하고 싶다. 땀 좀 흘리노라면 귓전으로 자박자박 다가오는 봄의 발걸음 소리, 야멸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봄은 어느새 칠부 능선을 넘고 있으리. 따듯한 햇살에 겨우내 앞산에 쌓였던 눈 스러지고, 귀 간질이는 마을 앞 개울물 흐르는 소리.

일상이 다소간 고단하다 하더라도, 해마다 나는 겨울, 삶의 자락에 서면, 만만하다. 깔축없는 겨울바람이다. 잔뜩 긴장한 눈이 낙엽수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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