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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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누구나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를 원한다. 언젠가 찾아오리라 고대한다. 구름을 타고 흐르다 하늘에서 내 앞으로 내릴까, 맑게 갠 날 언덕 너머 어느 들판에 고혹하게 꽃으로 피어 있는 건 아닐까. 행여 길을 잃어 내게로 오다 되돌아가 버린 건 아닐까. 조바심 치다 집을 나선다. 발 동동 구르다 행운이 오리라는 길목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행운은 좋은 운수라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세네카도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맞이할 준비가 돼야 한다,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라야 행운이 온다는 의미다. 행운을 기다리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으리라.

동양에선 행운을 운수, 나쁘게는 우연이나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서양은 다르다. 행운을 성공을 위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쳐,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이룬 성공을 행운 덕분이라고 말할 정도다.

나폴레옹이 네 잎 클로버를 보기 위해 허리를 굽혀 적의 총탄을 피했다는 건 유명한 야사다. 진위를 떠나 이미 전설이 돼 있다. 한국에서는 CEO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행운’이 첫 번째로 꼽혔다. 우리 관념 속에는 네 잎 클로버는 행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돼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앞뒤 이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행운을 바라지만 행복을 더 가까이 또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실은, 클로버의 꽃말은 이와 무관하다. ‘행운’만 아니라 ‘약속, 평화, 행복, 나와 함께, 나를 생각해 주오’다. 숫자 ‘7’이나 편지가 행운의 상징으로 통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행운을 찾는 눈이 클로버에 머무는 것은 흥미로워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다. 행운을 찾는다고 뒤적이는 네 잎은 실제 ‘돌연변이’다, 네 잎보다 아주 확률이 낮지만 다섯 잎 클로버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하고.

우리 머릿속에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지만,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세 잎 클로버를 짓밟고 지나서는 안된다. 그것은 행운을 얻기 위해 행복을 발로 밟아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네 잎 클로버 사연이 있었다. 시를 공부한다고 우당도서관에 죽치고 앉았던 시절 얘기다. 열람실에서 나와 콧바람을 쐰다고 사라봉을 바라보며 기슭을 비스듬히 걸어 오르는데 옛날 토끼풀로 친숙한 클로버가 길섶 일대를 덮고 있지 않은가. 순간 주저앉아 뒤적뒤적 헤치며 네 잎을 찾게 됐다. 세어 보니 여남은 개나 됐다. ‘햐, 이것 봐라. 내게 행운이 넌출째 들어오려나.’ 때마침 시 전문지 『심상』에 신인상 응모를 해놓은 때다. 느닷없이 나는 손에 넣은 네 잎 클로버를 신인상 당선의 전조(前兆)로 내다보고 있었다.

시인 등단이 이뤄졌다. 세네카가 말한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가 적중한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행운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행운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행운의 네 잎 클로버니 행운의 숫자니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운도 가끔은 기울인 노력에 감동한 선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번 안돼 온 일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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