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세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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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했다 인출하는 정신 기능이 기억이다. 인간에게 이 능력이 없다면, 지적 성장이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중1 때 집에서 주문한 문장 한 짝을 찾으러 목공 집에 갔다 개에게 물린 일이 있다 문짝을 받아들고 나오는데 풀어놓은 검둥이가 쫓아 나와 내 왼쪽 종아리를 문 것이다. 들고 있던 문짝이 큰 것이라 제대로 도망치지 못했던 걸까. 아프기도 했지만 와락 겁이 나 눈앞이 캄캄했다. 이후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개라는 짐승이 제일 무서운 존재로 마음속 깊숙이 똬리를 틀어 앉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바닷가에 있던 그 집은 앞이 돌계단이라 그 녀석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반세기가 더 지난 아득한 옛일인데도 기억에 생생하다. 좁은 마당, 현관의 유리창, 거친 돌계단의 분위기며 거기 채어 넘어질 뻔했던 집 앞의 울퉁불퉁한 길바닥까지.

개를 미워하게 됐다. 그 혐오감이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은 순전히 개에게 물렸던 어렸을 적 기억이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준다고 두세 번 집에 개를 길렀지만, 어찌어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 결국 악연이 됐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의식 속에 잠재해 있어 개와의 통섭을 막아 나선 것이다. 기억도 나름이겠지만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체험한 셈이다. 이 기억은 스트레스로 견고하게 각인돼 내 안에 주소화한 모습이다.

알레산더 로이드·벤 존슨의 <힐링 코드>에 나온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 정답을 말하겠다. 이 정답은 중대한 핵심이며 우리가 이 책을 쓴 중대한 목적이다. 체내 스트레스가 생기는 원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수년 동안 알고 준비해 왔던 것이지만, 인제야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스트레스는 세포의 기억이 일으킨다!’

단기 기억은 비교적 불안정해 머리에 손상을 입거나 전기 충격 등으로 의식이 상실되거나 하면 기억이 소실되기 쉽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더욱 확고해지고, 장기 기억으로 자리 잡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정보가 단단하게 고정돼 기억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치매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은 기억을 입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가 손상되거나 망가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기억 정보가 잘 입력되지 못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근에 일어났던 일도 기억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 뇌에 명백히 간직했던 기억은 해마와 관련이 없으므로 회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 과정은 그때의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보통, 아주 재미있고 즐거웠던 기억, 무척 슬프고 괴로웠던 기억은 오랫동안 생생히 남아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좀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의 곳간에 그대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억이 우울할 때보다 즐거운 상태에서 좀 더 쉬이 떠올릴 수 있다니, 이도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그러니 기억력을 높이려면 감정 표현이 솔직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을 부자연스럽게 하면, 극히 소수의 세포만 기억하는 과정에 참여하므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인이 세포의 기억이라 한다. 정답이 있다.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치환하는 것. 노력해야겠지만, 아잇적 ‘검둥이에게 물렸던’ 기억은 평생 안에 동거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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