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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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글이글 놀이 탄다. 신축년을 매조지는 찬연한 저 광휘, 장엄하여라.

들머리엔 꿈이 있었다. 묵은 것에서 미완과 실패의 기억을 딛고, 날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갇혀 시종 암울했다. 헤어나려 버둥대며, 어느덧 그믐날의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제대로 해낸 건 적고 많이 잃었던 한 해였다.

달력이 달랑 한 장, ‘31’, 마지막 숫자는 아직 유효라 했는데, 마저 지워지고 또 한 해가 저문다. 숱한 날들이 낙엽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가뭇없다. 깔축없이 그 끝, 세밑이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은 뒤돌아보지 마라. 하루하루가 모두 인연이었는데, 다 떠나갔다. 익숙해지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시간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가슴 아리다.

만해 한용운은 회자정리(會者定離)라면서, 떠난 자는 반드시 되온다 했다. 그럴진대 시인이 말한 기다림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보내지 아니하였다.‘ 고개 내저으며. 다시 오리라는 더 큰 그 믿음, 그게 사랑인가.

허구한 날 살아오면서도 나는 여태 철을 몰랐나. 만해의 그 유현한 마음자리를 한 번도 내 명상의 자락에 내려놓지 못했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뒤로 많은 것들이 변하는구나. 병들고 늙고, 허물 벗어 성숙하고, 때론 날개 꺾여 추락하며. 그러나 햇볕 속에 열매로 완성되고,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며 참회하고, 회개하고, 인생을 즐겼노라 역설의 미덕에 매몰되기도 하면서….

또 한 해가 저문다. 해넘이 뒤로는 흑흑 칠야.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절대 고독에 뒤척이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었나. 큰 성공은 바라지 않았고, 오직 무탈하기를 원했었는데 어땠나. 삐딱하게 일탈해 나만을 도모한다고 눈 붉히진 않았으며, 있어야 할 곳에 몸을 두어 할 일에 매진함으로써 남에게 누가 되진 않았는지, 더 나아가 내 행동거지가 이타(利他)의 경계에 미쳤었는지….

실로 나는 어떤가. 심신이 아울러 튼튼한가. ‘내 위로 내 넘으라’ 할 만한가. 혹여 흔들리고 있다면 왜인가, 어느 만큼인가. 등 꼿꼿이 세우지 못하고 어찌 남을 이롭게 하랴. 나이 들었으니 나잇값 한다고, 미립 나 너무 드러내려 않았나. 한 해가 저무는 12월 그믐, 오늘에 나를 올올이 들여다볼 일이다.

내 손이 남에게 닿으려면, 먼저 나를 반듯이 세울 일이다. 뼈대가 활발히 작동하고 의식이 초롱초롱 깨어 있어야 한다. 겨울이 힘든 건 묵은 상식이 닫아 놓은 견고한 관념일 뿐, 춥다고 오돌오돌 떨면 빈 가지 끝에 앉아 우는 새들 우스갯거리다. 한겨울 새벽 흩날리는 눈발 속에 ‘빤쓰 바람’으로 연병장을 돌며, ‘사나이로 태어나서’를 토해대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 한국의 장정들은 강하다. 감기도 않더라.

내일 아침은 임인년, 잃었던 일상을 되찾을 시점이다. 그래, 우리는 해낸다. 하늬바람에 앙가슴 내놓아, 새해엔 이미 간 날들은 잊으리. 강풍과 폭설에도 매화는 겨울을 나며 청향(淸香)을 폴폴 세상으로 흘린다.

서둘러 새 달력을 걸고, 문뜩 한라산을 바라보라. 눈 덮인 골짝에 흰색·분홍색 꽃잎을 펼치고 하늘을 받쳐 든 노루귀꽃을 그려보면, 마음 따뜻해 올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문다. 임인년을 향해 발돋움하자. 겨울을 나면 봄이다. 기어이, 우리 앞으로 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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