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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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창밖에 흰 눈이 내리는 밤엔/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리워져요./ 정답게 손잡고 뛰놀던 그 동무….’

성탄절 아침, 때마침 눈이 너풀거리는데, 어쩌다 흥얼거리게 됐다. 아득한 옛 시절, 눈 오는 날이면 부르던 노래다. 소박했던 시절이라 노랫말도 마음 따뜻하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도 꼬리 치며 좋아라한다. 눈이 내려 하얗게 쌓인 날엔 하얀 세상과 그 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신기할 것이다.

나는 마당 구석에 덫을 놓아 참새를 잡는다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둥그렇게 만들어 그물로 씌우고 그걸 받침목에 대어놓고 양쪽에 큰 돌로 눌러 땅바닥에 세우던 덫. 그 앞엔 입질 감으로 노란 좁쌀을 한 줌 뿌렸다.

참새들이 집 어귀에 떼지어 앉았다. 이틀만 눈이 오면 굶주려 이리저리 헤매는 녀석들이다. 그들 눈에 하얀 눈 위에 뿌린 좁쌀이 안 보일 리 없다. 나는 멀찌감치 숨어 참새가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손을 호호 불면서도 추운 줄 몰랐다.

한데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타닥 하고 덫이 내려치는 소리가 안 난다. 툇마루 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인다. 녀석들 덫 가까이 날아와 주억거릴 뿐 더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며칠 후 눈 오는 날 다시 시도했다. 덫의 타닥 소리는 불발이었고, 그 뒤로 팔딱거리는 참새를 끝내 내 손에 넣어 보지 못했다.

포획 장치가 허술해 약은 녀석들이 눈치챘을 것이다. 참새와의 지혜 다툼에서 한참 밀렸음을 안 것은 더 자란 후였다. 눈이 오는 날이면, 마당 구석에 놓았으나 실패했던 덫과 그 앞에 뿌렸던 노란 좁쌀 생각에 혼자 웃곤 한다.

어느 겨울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나는 마당 가운데서 눈사람을 만드느라 연신 더운 김을 뿜어댔다. 돌에 눈을 뭉쳐 몸통을 만들어 앉히고, 위에다 얼굴을 얹었다. 검은 나뭇가지를 잘라 눈과 코와 입을 붙였다. 멋대로 하지 않았다. 눈대중이었지만, 제각기 길이와 크기와 간격을 셈하며 전체 속의 부분과 그것들의 비율을 따졌다. 하지만 너무 단순했다. 어른이 쓰던 헌 벙거지, 그것도 검정이면 눈의 흰색과 선명한 대비가 될 것 같았는데, 구할 수 없었다.

내 생애에 처음 만든 이 조각품은 뒷날 햇살에 녹아내렸다. 검정 벙거지의 아쉬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왜 그랬을까. 벙거지라니, 깐에도 직접 만든 눈사람에서 체온을 느꼈던 걸까. 어린 영혼이 스몄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서부 유럽 여행 마지막 날은 충격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알프스의 주봉 융프라우요흐, 그 만년설과의 해후. 협궤열차를 타고 올라 그 앞에 선 순간,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눈이 내려 녹지 않은 채 만년이란 말이 신비스러웠다. 하도 눈이 부셔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다. 세상엔 이런 설경도 있었구나. 풀 한 포기 초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으로 사태 져 오로지 희디흰 태곳적 계곡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뜻밖에 까마귀 한 마리가 가로질러 계곡을 횡행했다. 행여 하고 귀 기울였다. 분명 까악까악 울고 있을 것인데, 더욱 기 쓰고 울고 있을 것인데도 울음소리 들리지 않았다. 길을 잃었나, 고독에서 일탈하려는가. 파닥이며 소실점으로 빨려들던 날갯짓. 그게 융프라우요흐 추억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다.

눈이 내린다. 성탄절 뒷날, 천지가 순백이다. 코로나로 얼룩진 세상이 복음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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