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곧 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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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아잇적엔 귤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일 년 두세 번 하는 제삿날, 그도 운이 좋아야 한 조각 맛볼 수 있었다. 상에 올렸던 황금색 큼직한 그것은, 알고 보니 당유자였다. 음복 때 껍질을 벗겨놓으면, 집 안에 진동하던 그 특유의 냄새 못잖게 시었던 그 맛. 당유자가 곧 귤이라 생각했다. 하긴 유자가 귤의 원조쯤 될까.

크면서 귤나무가 대학나무란 말을 들어 고개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은 귀한 나무라 빗대던 시절 얘기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귤을 재배하던 서귀포를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 부러워했었다.

20대 초, 서귀포 위미리 동창생 집에 갔다가 자지러질 뻔했다. 뒤란에 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가지가 무성해 지붕을 덮을 기세로 위의를 떨쳤다. 나무가 온통 귤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때마침 한겨울이라 귤이 노랗게 익어 황금빛이 찬연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넋을 잃었다. 친구네는 귤밭을 한다고 했다. 무척 부러웠다.

실제로,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귤은 쌀보다 비쌌다. 재배 지역이 서귀포에서 제주 전역으로 확대된 데 따른 과잉생산에다, 지구온난화로 반도 남부지방까지 재배 가능 지역이 넓혀지면서 겨울철이 되면 장바구니에 담기 가장 만만한 싼 과일이 된 것이다.

KBS ‘6시 내 고향’을 보다 깜짝 놀랐다. 거제도에서 한 촌로가 도시에 사는 자식에게 귤 두 상자를 부쳐 보내고 있지 않은가. ‘아니, 제주도 귤이 아니고 거제도 귤? 제주 귤이라면 주문해 보낼 텐데….’

과문 탓이었다. 남부 지역에서도 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심상한 일이 아니다. 귤은 바로 제주 산업의 근간이다. 귤 재배로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제주다. 귤이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주었다. 집도 현대식 슬래브로 바뀌고 아이들 도시로 학교 보내고 산을 오가는 자동차도 샀다. 근 40년, 짧잖은 동안 호강을 누린 게 모두 귤 덕분이다.

황금알에 다름 아닌 귤을 다른 곳에도 재배한다니. 그것도 호황이라니, 이게 예사로운 일인가. 나는 이제껏 귤나무 한 그루 재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귤 하면 제주’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왔다. 본래 제주는 인심 좋은 섬으로 부러움을 사 오지만, 인심을 북돋워 도탑게 해준 게 귤이다. 귤을 따 들이는 겨울이면 집집에 널려 있는 게 귤이다. 이웃에서 ‘먹어 보라’며 건네준 것들이다. 다른 지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소위 등외품이라는 파치면 어떤가. 상품으로 내놓을 때의 문제지 먹는 데 크기가 무슨 상관인가. 제주 귤의 당도는 13브릭스로 다 수준급이다.

나는 30년을 읍내에 살면서 귤 하나를 사 먹은 적이 없다. 이웃집이 과수원을 해 철철이 마대로 한가득 가져다주었다.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모자라면 길 앞 창고에 있으니 갖다 먹읍써 양.” 이웃의 정이 마를 수가 없다.

한데 연동으로 이사했더니 사정이 변했다. 도시라 이웃이 없으니 귤도 없다. 문학 강의 연으로 여류 수필가가 보내주어 고맙게 얻어먹었는데, 바닥나 사다 먹을까 하던 참에 그런 등의 연고로 J 작가가 엊그제 한 상자를 부쳐왔다. 아들 일로 마음고생 한다더니, 어디 그런 여유가 있었을까. 꺼내 먹는다. 남원리 산이라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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