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과 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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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조리돌림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죄인을 공개하고 그 죄를 낱낱이 알리며 망신을 주는 형벌이다. 회시(回示)라고도 하는데, 돌려 보인다는 말이다.

조선 건국 초에 반포된 국가 법전인 ‘경제육전’에는 “큰 악행을 저지른 향리는 형벌을 집행한 뒤 조리돌림을 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세종에 이르러 향리 등에 대해 조리돌림을 금지했지만, 군법 위반자에 한해선 적용했다. 일벌백계로 죄인에겐 수치심을, 구성원에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김윤보의 풍속화 ‘북 지워 조리 돌리다’를 보면 조리돌림의 행태를 알 수 있다. 죄인의 목 뒷덜미에는 죄상을 알리는 깃발이 꽂혀있고, 등엔 북을 지고 있다. 죄인 뒤에는 북을 치는 이와 회초리를 든 이가 있다. 북을 두드리며 여기 죄인이 있으니 구경하라고 외치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렸다.

현대판 조리돌림은 1961년 5·16 후 동대문의 주먹 보스 이정재와 정치깡패들에게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성선설’을 주창하면서 인(仁)·의(義)·예(禮)·지(智)를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인에선 측은지심, 의에선 수오지심(羞惡之心), 예에선 사양지심(辭讓之心), 지에선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나온다고 했다. 이 가운데 모든 마음의 출발지는 측은지심이다.

▲제주지법이 최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변호사에 대한 선고 공판을 비공개로 했다가 물의를 빚고 있다. 비공개 이유가 황당무계하다. “제주 사회에서 누구나 아는 변호사인 만큼 다른 피고인과 나란히 법정에 세우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선고 때만이라도 덜 창피를 사게 하자는 약간의 측은함도 존재했다”라는 것이다.

조리돌림을 경계하는 측은지심이 발동해 ‘열외’를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특권 의식이 드러난다. 이래서야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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