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일기
어느 겨울날의 일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하루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 살라 한다. 사물에 닿는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이란 직유의 보조관념, ‘선물’에 골을 파며 흐르는 유창한 웃음, 대화, 언덕에 올라 먼 산 바라기, 겨울을 나는 낙엽수의 치열한 생존, 머리 위로 내리는 다사로운 겨울 햇살, 오랜만의 완결된 만남, 지난밤 꿈속을 달리던 완주의 기쁨, 누웠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를 읽기, 요즘 세상사 한쪽 톺아보기….

인생을 단순화하면 별것 아니다. 삶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찌감치 풍경으로 밀어놓고 보면 비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배설하며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의례로 치르며 거드름도 피우다 한 생을 마감하기 전엔 또 배설이라는 구실이 어려워진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보니 참 그럴싸하다. 사실, 그렇잖은가. 방바닥을 기다 첫걸음을 떼며 직립보행의 환희에 겨워하다가 덧없는 세월에 등 굽더니 다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아기가 된다. 까짓 환갑의 회귀, 짧은 인생을 길게 서술할 것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삶을 단문으로 요약하면, ‘삶을 단순화하며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요즘 들어 겨울의 뜰을 거닐다 자주 서성이는 곳이 있다. 잎사귀 하나 남김없이 떠나 버린 늙은 왕벚나무 아래다. 아름드리다. 치켜보니 원줄기에서 줄기로 가지로 곁가지로 갈려 나간 신체의 섬세한 분화에 눈이 가면서, 견뎌온 삶의 무게에 경탄한다. 그 위의(威儀))에 그만 압도되는 순간이다. 저런 삶을 살았고 오늘도 찬바람 속, 남루 한가지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고 서 있다. 그런데도 빈한한 겨울을 떠나지 않는 나무. 어느새 바람 자고 우듬지로 눈부시게 겨울의 여린 햇살이 내려앉는다,

베란다에 앉아 여러 번 봤던 까치 부부, 구면이라 반갑다. 13층에서 제일 가까운 눈 아래 워싱토니아에 집을 지어 살더니, 거처를 옮겼는지 내왕이 뜸했다. 건축술이 탁월한 녀석들이지만, 자기 집을 쉬이 버릴 수 있는가. 요즘 집값이 고공행진인데, 모를 일이다.

쉼터 옆 작은 숲에 귤 네 알이 겨울 들어 노랗게 익어 참으로 탐스러웠다. 아이처럼 좋아하더니 그중 둘이 종적을 감췄다. 귤 철이라 싸고 만만한데 누가 실례를 한 걸까. 만인이 함께 즐길 것인데,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참 딱하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데 이게 뭔가. 안 그래도 뒤뚱거리는 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가만 보니, 경비원이 클린하우스 안에서 쓰레기 분류를 하는 양하다. 유리로 두른 시설이라 일하는 모습이 영상처럼 눈에 들어온다. 경비실에 있다 이곳 일도 번갈아 하는 모양이다. 늙음이 한창 깊어가는 연세 같은데, 소임이 가볍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노후에 하는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저게 삶이다. 일하고 나서 경비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겠다.

언제부터인지 주전부리가 습관으로 눌어붙었다. 아내가 내놓는 ‘가파도 건빵’, 그곳 해풍 맞은 깨보리 건빵이라는데, 한둘 입에 넣어 오물거리다 보면 손이 자꾸 간다. 버릇이다. 이거, 작은 일이 아니다. 자연, 입을 놀려야 무얼 끄적이게 된다. 책상에 앉아 눈앞으로 다가오는 한라산 설경에 눈을 줄까 하는데, 오늘은 잔뜩 구름이 덮였다. 또 한 움큼 꺼낸다.

겨울 하루는 짧디짧다. 그래도 삼시세끼는 챙겨 먹는다. 저녁 시간이다. 커튼을 반쯤 내리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