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꺼내는 화소(話素)
설날에 꺼내는 화소(話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설은 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음·양력을 오가다 구정에 머물렀다. 전통 탓인지 양력보다 구정 쪽이 친근한 건 몸에 밴 정서적 호감일까.

없던 시절에도 설은 추석과 함께 잘 쇠야 하는 양대 명절이었다. 인식 속에 그렇게 뿌리 박혀있다. 이날만은 일손을 멈추고 정갈하게 빚은 명절 제수를 마련해 차례상에 올렸다. 뫼는 고봉밥이고 갖가지 떡과 과일이며 생선을 올려 절하며 흠향하시라고 빌었다.

아잇적 기억이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집안이 부산하게 돌아갔다. 어머니는 우선 깊숙이 담아뒀던 놋그릇을 꺼내 누나와 같이 닦았다. 퍼렇게 녹슨 그릇들을 산도 쑤세미에 물 머금은 속돌 가루를 찍어 바르며 꾹꾹 눌러 닦았다. 녹물로 수세미가 새까맣게 되면서 놋그릇이 반들반들 빛을 냈다. 뫼·갱 그릇, 쟁반, 촛대, 잔대와 잔, 자그마한 접시….

일제강점기 때 수탈당할 뻔했는데, 우영에 묻어 간신히 모면했던 제기들이라 했다. 수난의 역사를 몇 줄로 요약하던 어머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지 한쪽으로 많이 기울던 모습이 떠오른다. 놋그릇 닦기는 하루해가 거의 기울 무렵으로 갔지만, 모녀간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 년 만에 돌아오는 설날은 고단한 일상에 갇혀 살던 어른들에게도 아이 같은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떡국, 설빔(설 옷), 차례, 세배, 덕담, 복조리 걸기, 널뛰기…. 하지만 육지에서 지내던 그런 설날 행사는 누려 보지 못했다. 설빔이란 말은 커서야 익힌 낱말이고, 세뱃돈도 동전 한 닢 받아 본 적이 없다. 차례가 끝나고 집안 어른들에게 얌전히 절하면 하는 말, “어허, 복 많이 받아라.” 덕담이고 세뱃돈이었다. 가난에 무슨 여유가 있었을까.

차례를 친척 집집이 돌며 지내노라면 오후 두세 시쯤이 됐다. 아침 점심 두 끼를 음복으로 때운 셈이다. 곤밥(산도쌀밥)에 쇠고깃국 그리고 떡으로. 설 명절날은 오랜만에 배가 호강하니, 황홀했다.

집안 차례가 끝나면 동네를 돌며 어른들에게 세배해야 했다. 탈상(脫喪)하지 않아 상을 심은 집부터 연세가 높은 어른으로, 차례차례 골목을 누볐다. 절하면 “아이고 착하다,”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세배,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여겼다.

설날엔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성묘하거나 납골당에 참배하는 날이 되면 좋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좋은 덕담이 오가더니, 세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복잡한 것에서 도망하려는 시대적 취향이니, 다시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송구영신하는 의례로 절하며 덕담을 나누면 좋은 것인데, 하던 걸 안 하지 않으니 섭섭하다.

집안 세배는 끈질기게 이어진다. 역시 돈의 힘은 여기까지 지배적인가. 몇 년 전부터 세뱃돈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아이들로 선을 그었다가 50줄의 두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 넷에 이른다. 가정을 가진 아들들에게까지니 연금으로 사는 형편에 큰 짐이 된다. 하지만 평소 가족에게 베풀기보다 얻고 받는 쪽이라 설날을 기회로 선심(?) 한번 쓰고 넘어가자는 시나리오다. 아니, 내 깜냥으론 깔축 없는 퍼포먼스 수준이다. 얼마씩 할까. 그건 아래로 내려갈수록 돈이 커지겠지만, 이번 설엔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중이다. 배춧잎이냐, 신사임당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독자 여러분, 설날 복 많이 지으시기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