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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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어디서 이 바람은 시작되는지.’

그 시절 손이랑 발이 동상(凍傷)에 걸리기 쉬웠다. 그랬었지. 발이 고샀느니, 손이 고샀느니.

겨울 찬바람에 맞서 입김으로 호호 불고 손 비비며,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어린이들이 즐겨 놀았던 놀이. 바로 쪽기 차기.

제기 차기를 위해 아이들은 날씨가 풀린 날엔 올레와 올레에서, 찬바람 부는 날엔 쇠막(외양간) 한 쪽 모퉁이로 모여든다. 언제 준비해뒀을까. 엽전을 종이로 말아서 그 종이의 두 끈을 엽전 구멍으로 내보내 만들었다. 엽전을 구하기가 사정이 여의치 못할 땐 엽전 대신에 사기그릇 조각이나 작은 돌멩이를 넣어서 만들기도 했다. 요즘 족구하고는 조금 다른 놀이다. 하지만 놀이 방법이 다양하다.

한 사람이 계속해서 얼마나 차는지 겨루어 보는 셈쪽기로 편을 짠 단체전. ‘사방쪽기라 해서 둘러서서 날아오는 대로 차면서 놀기도 한다. 발의 안쪽 옆구리와 바깥쪽으로 번갈아 차거나 뒤꿈치로 차는 안팎차기’, 무릎으로 하는 무릎차기’, 발끝으로 차는 앞뿌리차기’, 그밖에도 팔굽이나 이마로 받아 차는 놀이 방법 등 전신을 활발하게 움직거리는 운동이었다. 어느 동네서든 제기 차기 놀이에서도 재주를 부리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저 친구는 한 번 차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몰라. 한참 기다려도 제기는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 성질 급한 한 아이가 한 마디 내던진다. “. 너 그만 차라. 그만 차지 않으면 우리만 명절 먹으러 갈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자 그제야 그래. 그만 차고 바통을 넘겨줄게하는 것이 아닌가.

정월이면 검은 고무신 신고 발끝이 시리는 것을 막자는 데서 비롯된 제기차기 놀이가 시작된다. 제기차기에 삼매경에 이르면, 명절 먹는 것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꽤나 있었다. 큰집 작은 집 차례로 제례를 올리다보면, “두셋이 안 보염져. 어디 갔는지 찾아보라. 절을 해야 하는데하시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막내 아이는 형들이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침 떼고 모르는 체 한다. 형들과의 약속을 미리 해뒀기 때문에 이실직고를 할 수 없는 사정이었으니.

제기 차기는 이미 고대의 공차기인 축국(蹴鞠)에서 비롯된 놀이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뎌기라 했다가 18세기 이후 져기또는 젹이를 거쳐서 제기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부터는 겨울철 세시 풍속으로 정착되었지만, 현대의 장난감 홍수시대에 밀려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돈 제기라고 불리는 엽전제기가 아닌가. 그 시절의 동네 친구들은 모두 흩어졌고, 마을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을 뿐.

추위가 풀리고 동상에 걸렸던 자리가 몹시 가려워지기 시작하면 그리운 추억의 한 토막은 봄으로 마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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