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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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원장·수필가

아름다운 그녀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갔다. 어린 자녀의 손을 붙잡고 살고자 부단히도 애쓰던 그녀를 배웅조차 못하고 보냈다. 1월 첫 주부터 보러 가야지 생각은 계속되었고, 설명절을 지내고는 빨리 봐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나는 코로나19가 무서워 그녀에게 가지 못했고, 그녀는 떠났다.

오늘 나는 코로나19 확진이 되어 그녀의 장례식조차 가지 못한다. 그저 방에 갇혀 후회를 할 뿐. 자가진단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판정되고 PCR 검사를 받던 지난 금요일, 그녀를 만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토요일 PCR 검사에서 양성이 확정되자 보건소로부터 역학조사지를 작성하라는 문자를 받고 작성하는 내내 만난 사람의 수가 적음에 내심 뿌듯했다. 그녀와의 만남도 나중에, 코로나19 기세가 누그러진 후에 만나는 게 더 좋으리라 여겼는데, 그녀가 떠나버렸다.

만일 내가 마스크 잘하고 그녀를 찾아가 눈인사만이라도 하고 왔다면 어땠을까? 밀려드는 후회로 가슴만 먹먹하다.

‘나노 사회’로 향하는 변화의 물결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감당치 못할 급류로 휘몰아치고 있다. 혼밥, 혼술이 자연스럽고,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일은 이제 하면 안 되는 일인지, 안 해도 되는 일인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왔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 온 민족이다. 아픈 이가 있으면 병문안을 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반찬 한 그릇 나누는 것이 사람의 도리로 알고 살아왔는데, 2년 새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조차 거리 두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렸다.

“당신은 어떠세요! 만나지 않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지 않으세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만남이 없는 관계가 언제까지 돈독하게 유지되며, 벗과 나누던 마음의 온도가 여전하다 장담할 이는 몇이나 될까?

“2020년 처음 그때보다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 줄어들지는 않았나요?” 누군가의 마음에서도 내가 조금씩 엷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일일 신규 확진자 수의 최대치를 기록할 날이 한 달 이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이제 진정한 위드 코로나가 예측되고 있다. 방역지침이 바뀌고 외출이 늘어나면 경제가 회복되듯 관계도 자연스레 회복될까? 관계는 정성 없이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 다가서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욱 급속히 메말라갈 것이며, 안 만나도 괜찮은 사이로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길 노래한 시인처럼 코로나19에게 빼앗긴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동창생 얼굴 본 지가 언제이며, 지인들과 밥 먹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제는 미루지 않고 소중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오는 주말에는 마스크 단단히 쓰고 가방에는 손 소독제 챙겨 들고 벗과 함께 가족과 함께 봄 마중을 나갈 것이다. 유채꽃 사이를 누비고 매화꽃 고운 자태 아래서 기념사진도 찍을 테다.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발걸음을 붙잡지만, 겨울을 견뎌 낸 봄을 마중하듯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에 봄이 오도록 정성을 드릴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회복돼야 하기에 우리는 만나야 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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