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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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상을 받기 직전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그는 한국어 중에 ‘정’과 ‘보람’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옮길 수 없다고 했다. 합당한 단어가 없다는 말이다.

조용필의 노래 ‘정’의 가사.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사전적 뜻은 ‘마음의 움직임, 염려해 헤아리는 마음’이지만 정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살펴보면 우리는 온통 정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굶어도 정만 있으면 살고, 정이 들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 소금밥에도 정이 붙지만 정 떨어지면 산해진미도 그저 시들하다. 그리 보면 정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이 있는’ 품앗이지 싶다.

▲하버드대 의대가 1938년부터 10대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왔다. 70여 년 뒤 60여 명만 살아 있고, 대부분 90대 나이였다. 1명의 대통령을 비롯, 노동자·변호사·의사·벽돌공 등 각계에서 활동했다. 반면 알코올에 중독되거나 정신분열로 요절한 이도 적지 않았다.

연구팀의 결론은 ‘좋은 관계’가 행복과 건강을 지켜준다는 사실이다. 가족·친구·지역과 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행복하게 오래 산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애정 없고, 갈등 심한 결혼생활은 이혼보다도 해악을 끼쳤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사례도 많은 걸 시사한다. 가장 힘들어하는 게 일보다 ‘관계’라고 했다. 10명 중 8명이 선후배와 불화를 겪고 3명 정도는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는단다. 참으로 각박하고 외로운 불통의 시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람들은 갈수록 어렵고 외로워지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3명은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주변에 없고, 2명 중 1명은 급하게 목돈이 필요해도 손을 벌릴 지인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힘들거나 우울해도 5명 중 1명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흔히 역경은 사람을 단련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역경이 외로움을 동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뜩이나 불행한 처지에 홀로 남겨졌다는 느낌은 영혼을 상하게 해 자칫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정은 따뜻하고, 가까워야 제맛이 나는 법이다. 정은 돌도 녹인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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