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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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외할머니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머리는 항상 반들반들 하며 깨끗이 빗어 흐트러짐이 없고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고무신을 신은 깨끗한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도 할머니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날 때마다 왜 내가 그때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많다. 할머니는 식사를 할 때면 흘리지 않고 먹으려고 더 조심하는 듯 했지만 흰 블라우스에 흘린 자국이 나면 난 퉁명스럽게 왜 자꾸 옷에다 흘리시냐고 했던 기억이 오늘도 밥상 앞에서 떠오른다. 난 지금 우리 할머니 연세에 미치지도 않음에도 질질 흘릴 때가 많다. 하루는 잘 떨어뜨리는 자신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런 자신을 탓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럴 수도 있는데 뭘 그러냐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우리 할머니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늙어갔을 텐데.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면서 왜 그때 그 생각을 못했는지 눈시울을 적시며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막내아들인데 자녀들 공부시킨다고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는 막내아들 손주들이 보고 싶어 이사 가버린 집을 하루에 세 번 와서 둘러보고 가신다는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왜 그때 귀 넘어 들었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왔어야 했는데 하시며 어머니는 지난 일들을 말씀하실 때면 그때는 나만 살려고 버둥거리다 보니 하며 말끝이 흐려짐 속에 회한이 묻어있다.

내가 겪어봐야만 알게 되는 어리석음이 지금도 우리 삶 속에 이어지고 있다. 막내아들 혼인 준비하면서 내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혼자서 우리를 출가시켰는데 그때의 어머니 심정을 조금씩 알 것 같다. 의논할 남편도 없이 얼마나 힘든 결정들을 했을까. 그리고 짝을 찾아서 훌쩍 떠나버린 빈 둥지에 남은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막내아들 장가보내면서야 헤아려보게 된다. 그리고 새 둥지를 튼 우리들은 어머니의 필요를 채워드림보다 우리가 필요할 때면 찾아 들어 필요가 채워지면 돌아서는 우리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그 마음마저 우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내 생각 말고 너희들만 잘 살면 된다는 말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하시겠지. 나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로도 알 수 있듯 우리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남아 있음에 감사하다. 그때 그러길 잘했지 하는 추억을 만들어 봐야겠다. 한가지만이라도 어머니의 마음에 흡족함을 남겨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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