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고 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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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과거를 나대며 들고나는 의식의 흐름이 뚜렷이 감지된다.

시계가 역회전하는지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이 잦고, 거기 머무르는 시간이 턱없이 길다. 아득한 시공간에 자신을 가둬 머뭇거리다, 번쩍 눈떠 이곳저곳 뒤적인다. 흔들고 풀고 헤치면서 허둥댄다. 아무리 살펴도 명확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오래 머물수록 시간 위로 무료함만 쌓여 헛헛할 뿐인데도 그런다. 나이 듦의 낌새라 지레짐작이야 했지만, 한쪽으로 쏠린 우심한 증후군이다.

으레 주마등, 파노라마 같은 단어가 내 둘레를 심상찮게 따라다닌다. 이 말들이 유의미하게도 내 안에 뿌리내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젠 굽이쳐 흐르려 한다.

두 아들을 분가해 내보냈고, 공·사립학교를 오갔던 굴곡진 교직 44년, 눈치 보며 짐 싸 들던 열두세 번의 이사, 결핍 속에 허덕이던 젊은 날의 방황, 뒤늦게 대오의 끄트머리로 끼어든 문학 동네, 읍내 집 작은 정원에서 자연에 몰두하던 서른 해, 지금 아파트에 몸을 부린 즈음까지….

축적된 시간이 줄을 세운 궤적의 단순 나열일 뿐, 그게 침전된 진액의 서사(敍事)는 아니다. 과거라는 시간이 주마등을 달아 파노라마로 넘실대지만, 이거다, 묘비명으로 새길 첫 낱말을 찾지 못한다. 내 손을 거부해 다가오다 돌아앉는 그들 또한 부질없는 잔상일 뿐이다. 가슴 저미며 되돌아보는 주마등의 행렬과 내용 없이 오작동만 하는 파노라마의 텅 빈 화면. 그 앞에 시종 허탈하다.

팔순의 문턱을 넘는다. 암만해도 지난날은 덧없는 꿈결이었나 보다. 어느 햇살 좋은 날, 꿈을 꿨던 것 같다. 깨어 오만상 찌푸리며 울던, 아잇적 낮 한때 선잠 같은 짧은 꿈.

내가 지난 시절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뒤를 돌아보다 돌아앉아 내일을 내다봐야 할 때가 도래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가불해야 하는 건 아닌지. 예약하진 않았어도 과거완 달리 내게 올 미래는 길지 않을 것이다. 짧고 단조할 것을 알 만큼 겪어왔다. 아무리 짜깁고 보태고 곱치고 부풀려도 길 수 없는 시간이다. 내가 누려 온 과거는 찰나, 그런 셈법이니 다가올 미래를 말할 시간의 단위는 없다. 이미 소멸해 버린 건 아닐까. 짧으니 촘촘히 살아내야 한다. 긴장하는 이유다.

오래 살아왔으니 미래를 길게 할 묘략이 찾아질 것이다. 밤을 낮에 잇대서라도 길게 사는 법을 길들여야 한다.

모든 사물은 인과율로 얽혀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세월을 걸어온 길이 있었듯, 오늘 속에 내가 겪게 될 미래의 끄나풀이 있을 게 아닌가. 놓치지 말자. 낱낱이 그윽한 눈길로 내다봐야지. 수많은 날을 훑어왔듯 올 시간도 제대로 들여다봐야지. 이것, 내게 미래를 길게 살아낼 일이 간절하다.

뜰을 거닐다 늙은 왕벚나무 아래 멈췄더니, 쩍쩍 벌어진 밑동 몇 군데에 꽃을 달고 있다. 새로 낸 꽃들이다. 나무가 다시 내일을 기획하는가. 저 꽃 사태, 거대하게 살아낸 오랜 세월의 찬란한 성과에 무얼 더 얹으려나. 가만 보니, 나무가 미래로 나아가려는 몸짓 같다. 새 꽃망울에 꽃샘을 견뎌낼 힘이 있을까. 꽃이 시들면 잎도 줄기도 같이 이운다. 그래도 나무는 꽃으로 미래를 내다본다. 어떻게든 벌충하려는 모습이 놀랍다.

미래라는 겪어 보지 못한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익숙한 것에 머물되 나태하지 말고, 칭얼대며 그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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