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향력
어떤 영향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한희정,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신열 앓던 벚꽃망울이 어느새 만개하더니 서둘러 지고 있다. 뽀얀 꽃길 한번 걸어보지 못했는데, 저들끼리 왔다가 저들끼리 가는 벚꽃들은 연둣빛 새순에게 미련 없이 자리를 내어 주고 있다.

꽃피고 지는 사이, 오미크론 확진판정을 받았다. 온몸 근육통으로 끙끙 앓아누웠는데 현관 벨소리가 났다. 겨우 일어나누구세요반복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빼꼼 내다보니 종이 가방 두 개와 함께, 때 맞춰 문자가 왔다. ‘잘 챙겨 먹고 빠른 쾌유 바래.’ 지인이 준 도라지생강 달인 물을 마시며 오랜만에 따뜻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소설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편의점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으로, 야간알바인 주인공 독고와 손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전이야기는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었다.

서울역 노숙자였던 독고는 우연히 맘 좋은 편의점 사장의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사장은 알콜 중독으로 과거기억을 잃고 노숙자로 전전하던 독고를 제대로 사람구실 할 수 있도록 편의점 야간 직원으로 채용한다. 독고는 편의점을 드나드는 여러 군상들의 삶의 고충을 마주하며 맞춤형 상품들을 추천해준다. 손님들은 엉뚱하고 주제 넘는 오지랖 같아 언짢기도 했지만 독고의 추천 상품을 사고 나면 신기하게도 고민이 해결되고 서서히 달라져 가는 자신들을 느낀다. 독고 역시 편의점 일상을 통해 세상의 눈을 뜨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민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또한 과거의 사실들을 기억해내면서 삶 자체가 관계이며 관계는 소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데 있음을, 한 사람의 진심이 한 사람을 바로 서게 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확인한다.

우리 인생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라는 힘이 필요하다. 작은 마음일지라도 함께한다면 엄청난 영향력이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주변에도 조건 없이, 아낌없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식을 접하지만 나 또한 실천이 쉽지 않다. 노숙자라는 틀을 깨어 사람대접을 한 편의점 사장처럼, 함몰된 세계에서 벗어나 모두가 존엄하다는 걸 알고 실천을 선택한 독고처럼.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자신의 의지에 달린 거란 걸 새삼 느꼈다.

내게도 기회가 왔다. 친구가 오미크론에 확진되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아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작은 마음이 보태질 기회가 반가웠다. 서둘러 도라지와 생강을 사러 마트로 향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