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년 전의 편지, 그리고 이은해와 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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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욱 편집국 국장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중략)…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지요?…(중략)…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병술(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이 편지는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 조성을 위해 묘를 이장하던 중 발굴된 고성(固 城) 이씨(李氏) 이응태(1556~1586)의 묘에서 발견됐다.

이응태의 부인은 남편에 대한 뜻깊은 마음을 담은 이 편지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를 함께 묻었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 편지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한다.

헤어짐이 잦은 시대,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씨의 부인은 자신의 머리를 잘라 미투리를 꼬아 편지와 함께 넣었다. 미투리는 삼 껍질 등을 꼬아 만든 신발로,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을까 짐작이 간다.

이 편지에 나오는 병술년은 임진왜란 6년 전이다.

450년 전 애틋한 부부애를 볼 수 있는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다,

안동대학교는 ‘450년 만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주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평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씨와 이씨의 내연남이 붙잡혔다. 이들이 남편의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수영을 못하는 남편에게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게 유도한 뒤 구조하지 않아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고유정이 전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 시신을 훼손한 후 제주지역과 완도 해상, 경기지역 등에 유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부부간에 잔인한 사건들이 끝이지 않고 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고 맹세했던 부부가 비극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최근에 허다하다. ‘부부는 전생의 원수였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오는 5월은 가정의 달.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 첫 주창자인 한 목사는 1995년 어린이날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 TV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아 ‘부부의 날’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부부는 완벽한 인격체의 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의 결합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동안 의견 충돌 등 부부싸움은 당연하다. 지혜로운 부부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며 부부싸움을 극복한다.

이은해와 고유정, 그리고 45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의 가슴 절절한 사랑의 편지. ‘지금 우리 부부는 어떤가?’하고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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