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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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는 소시지인 ‘살라미(salami)’는 우리의 순대와 모양이 흡사하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혼합해 만들기도 하고, 거위나 멧돼지 고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소금과 마늘, 후추 등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염장한 탓으로 짭짤하고 딱딱하기에 얇게 썰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먹는 특성 때문에 생긴 용어가 ‘살라미 전술’이다. 주로 협상 과정에서 구사된다. 어떤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처리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1940년대 헝가리의 한 독재자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정적을 제거하면서 “비공산주의자들을 살라미처럼 썰어버려야 한다”며 먼저 우익을 처단했다. 이후 중도파를, 맨 마지막엔 공산당 내부 세력 중에서 자신과 뜻이 다른 이들을 숙청했다.

▲이 전술은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자주 사용했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핵을 전격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결, 유예, 불능화, 봉인 등 ‘단계적 해결론’을 제시하며 대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선 트럼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살라미 전술은 선거에서도 알게 모르게 구사되고 있다. 이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계층을 꼽으라면 ‘무당층’일 것이다. 어느 후보에게도 지지하는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다. ‘집토끼’나 ‘산토끼’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한다. 막판까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에 이를 지켜보는 후보들로선 애간장이 탈 수밖에 없다.

후보가 비호감이라면 이들의 살라미 전술 구사력은 절정에 이른다. 최근 막을 내린 20대 대선이 대표적이다. 선거일이 가까이 올수록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오히려 증가하는 이례적 현상까지 나타났다.

▲선거에서 지지세 확산의 필승 전략은 대략 이렇다. 일단은 집안 추스르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원팀’ 구성 여부가 중요하다. 어떻게든 초반에 전통 지지층을 확실히 결집하고 나서, 중반에 중도와 무당층 공략에 나서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막판에 이르면 전통 지지층 재결집에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언제나 관건은 무당층의 향방이다.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는 6ㆍ1 지방선거에서도 묻고 따지면서 끝까지 후보들과 ‘밀당’하려고 할 것이다. 살라미 전술은 유권자들로선 실리를 챙기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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