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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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바람 좋은 봄날 오후 한때 풍경.

미풍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면서 나뭇잎이 파르르 운율을 탄다. 막 내려앉은 햇볕이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숲 아래 아이를 품고 앉은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도 맑게 웃는다. 아이는 세상을 아직 모른다. 알 수 없거니와 알지 않아도 된다. 저 땐, 반짝이는 눈매가 곱다. 욕심이 없는 눈이다.

아이가 흥얼거리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또 웃는다. 숲으로 드는 볕과 바람 속 곱디고운 아이의 웃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언어다. 티 묻지 않은 저건 아이만의 범주다.

퇴근하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 엄마! 부르는 소리에 숲이 살짝 돌아눕는다. 서슬에 참새 떼지어 날았다 금세 나뭇가지로 내린다. 곱절로 시끄럽다. 지저귀는 참새들, 아이와 말이라도 주고받는 것일까. 아이는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키며 좋아라 큰 웃음을 터뜨린다. 새소리와 웃음은 소통이고 교감이고 공감이다. 엄마와 할머니 두 어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뒷모습이 바람결에 리듬으로 일렁인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진짜 평화를 말하면 저런 것이 아닐까.

저토록, 해 기울 무렵을 고자누룩하게 한 건 바람이었다. 바람은 본시 천성이 곱다. 아이의 웃음은 바람의 몫이었고, 바람의 일기였디. 4,5월엔 명지바람이 불어 아이를 저토록 들뜨게 한다. 화창한 날씨에 조화와 화해의 바람이다.

한데 바람은 여차하면 역정 내어 사람을 고난으로 몰아넣는다. 강풍에 휘청거리다가 넘어지고 부러지기도 한다. 사람에겐 바람을 막아설 물리적인 힘이 없다. 퍽 하면 바람 앞에 무너진다. 그러나 바람을 제어하는 자가 있다.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을 견뎌내는 사람이다. 바람을 이겨내는 내성(耐性)은 쇳덩이보다 단단하다. 바람 앞에 남루로 펄럭이다 쓰러지면서도 일어서는 불굴의 기개를 역사에서 보아 왔다. 그것이 바로 12척 충무공의 배다.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바람은 부드럽고 훈훈한 손길이다. 갈바람도 소스리바람도 삭풍도 스치는 공기의 흐름, 대기의 순환일 뿐,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바람을 본 적이 있는지 그대에게 묻지만,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부러뜨리고 뿌리를 뽑는다.

바람의 실체를 소리에서 찾는 건 난센스다. 오밤중 마당을 휩쓸고 지나며 내는 소리를 산짐승이 포효한다 하고, 귀신의 울음소리라 한다. 바람에 겁먹은 자의 귀엔 바람의 소리를 괴음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상상해 낸 바람의 공포에 자신이 갇히는 것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니 바람의 연속이었다. 단 하루도 바람 잔 날이 없었다. 윽박지르며 바람이 들이닥칠 때는 인생이 바람의 난장이었다. 그런데 바람 앞에 서서 허덕대다 보면 어느새 그 바람이란 게 온데간데없다. 대기의 흐름이 다시 선순환구조로 돌아선 것이다. 아, 살아내려는 자의 눈물겨운 복구 현장, 바람에 꺾이고 찢기고 흩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고 얹고 맞대며 깁고 그러모으고 있다.

모질기보다 우리를 살판나게 하는 바람이 훨씬 많다. 폭풍이야말로 바다를 건너는 항해사에게 ‘전진하는 자의 벗’이라 했다. 바람은 처진 자를 일으킨다. 때로 바람은 신명이다. 바람이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단조할까.

바람에 웃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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