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오늘에 붙이는 이름을 생각하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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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기무상(金氏) 가조구(家族)가 같은 전공이시무니까?” 선배는 이른바 일본식의 어눌한 한국 발음을 흉내 내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중간고사 기간에 연구자료 수집차 일본에 다녀온 선배의 너스레였다. 맞은편에는 일행을 인솔했던 교수께서 일본 시대극에서 본 여인처럼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큰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곳한 이 몸짓은 한껏 달아오른 학교 앞 단골 선술집을 한순간에 일본 현지로 만들었다. 일행의 성씨가 공교롭게도 모두 ‘김(金)’이어서 현지 직원에게 일가족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모두 같은 성씨였지만, 한눈에도 도무지 한 가족으로 보기는 어려운 일행이었다. 더구나 해외여행자유화조치가 시행된 지 5년이나 지난 1994년 5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해외여행이 드물기는 해도 없을 때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선지 해외여행 경험 없는 후배를 놀린다는 의심이 퍼뜩 들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오히려 여흥은 한껏 지펴졌다. 그렇게 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티를 낼 요량이었을 선배 일행의 익살과 다음 여정에는 동행했으면 하는 후배들의 설레는 맘을 담은 봄밤이 왁자지껄하게 깊어 갔다.

같은 성씨라도 본(本)이 다르면 혈족(血族)이 아니라는 건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같은 본이라도 중시조(中始祖) 등에 따라 파(派)가 나뉜다. 같은 파라도 항렬(行列)에 따라 위계가 갈린다. 같은 항렬이라도 남은 이름 한 자로 구분된다. 남은 이름 한 자마저 같은 ‘동명이인’이라도 부모와 거주지, 나이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니 “이름”이란 그렇게 불리는 “이것”을 다른 것과 구분하는 기호다. 경주(慶州)를 본으로 하는 김씨 집안 수은공파(樹隱公派) 경순왕(敬順王) 41세손인 김완영(金完英)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를 가리킨다.

“이름이 없는 것(無名)은 세상의 시작(天地之始)이다. 이름이 있는 것(有名)은 만물의 어머니(萬物之母)이다.” 도덕경 첫 장에서는 우리가 찾아서 걷고 있는 이 길만 길인 것도, 우리가 구분해서 부르는 그 이름만 이름인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간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 시작하고 난 이래로 이름이 없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해서 불리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춘수 시인이 노래했듯이 이름을 붙이고 부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도덕경에서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를 “만물의 어머니”로 표현한다. 봄으로 부르면 봄이, 5월로 부르면 5월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은 아니다. “잔인한 봄”이 있는가 하면 “서울의 봄”도 있고, 지난해와 올해의 “5월”은 다르다. 그래서 공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 학자들은 올바른 이름(正名)을 붙이고 부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자가 역사를 기록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벼슬아치와 도적들이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도 같은 의미다. 봄이 이울고 여름이 피는 시절이다. 내일이 오늘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를 생각하는 때이기도 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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