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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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삼 년 가까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조심하며 지냈다. 만나야 할 사람까지 피하며 사람 노릇 못하고 지냈다. 결국 느지막하게 전염병의 올가미에 걸렸다. 꼼짝없이 일주일을 갇혀 지내야 하는 구속이 차라리 속 편하다. 두려움과 공포로 보낸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신기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재택치료자 집중 관리군’에 속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하루에 두 번, 병원 간호사에게 상태를 묻는 전화가 왔다. 그러다 친절하고 밝은 음성을 가진 간호사와 통화를 하게 됐다. 무엇이든 도와주겠다는 말이 큰 의지가 되었다. 소상하게 묻고 상담을 받아 주는 게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혹 긴급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를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게 되면서 딸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직업의식에 의한 업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겸손까지. 일일이 챙겨 묻는 자상한 마음에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많은 환자를 전화로 상대해야 하는 처치에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예방주사를 맞은 덕인지 감기 정도 앓다 수월하게 넘어갔다. 격리 해제하는 날이다. 자주 다니는 병원이라, 이름을 물었더니 몸조리 잘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간호사님, 고맙습니다.” 말인사로 대신했다. 비대면 통화지만 간호사의 인품을 가늠할 수 있었다.

요즈음 ARS 전화를 이용할 때마다 녹음된 음성으로 지시를 따르자면 느려 답답하다. 사람이 하던 일이 점점 기계화되는 세상이 삭막하다. 감정노동자에게 언어폭력을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 조심스럽다. 혹 말실수로 상대방 기분을 거슬리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상담자와 접촉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지루하던 마음을 가라앉혀 통화를 한다. 용건을 물으면 친절하고 상세하게 궁금증을 풀어준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서로 신뢰감을 얻는 매개다.

간호사 하면 기억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요즈음 안과병원 특성상 노인 환자가 많다. 안과 질환이나 백내장 수술로 아침부터 병원은 만원이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이 힘겹게 들어섰다. 비닐봉지에 약봉지가 가득하다. 허리를 펴 숨을 고르는 사이 간호사가 다가갔다. 혼자 산다고 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연락도 없이 오질 않는단다. 기다리다 못해 불편한 걸음으로 도움을 받으러 오셨다. 눈이 어둡거나 글을 읽지 못하는 것 같았다. 끼니도 못 때운 채 왔다는 말에 손을 잡아, 잠시 기다리시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돌아온 간호사는 부드러운 빵과 우유를 사 왔다. 시장하실 텐데 요기부터 하시라며 우유팩을 뜯고 빵을 드린다. 잘 들리지 않는 귀에다 차근차근, 어느 약부터 복용할지 순서를 표시하며 설명까지 한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절대 안 된다는 당부까지. 엘리베이터에 태워드리고 돌아오는 간호사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다. 노인을 대할 때마다 공손하게 불편한 몸을 거들어 진료를 돕는 게 몸에 뱄다. 병원에 갈 때마다 친절하고 마음 따뜻한 그 간호사를 눈으로 먼저 찾게 된다.

소소한 일이라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 모르는 타인의 가슴에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친절이 울림으로 온 두 간호사에게 겪은 감동이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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