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져 가는 종이 자료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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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前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현대에 사용되고 있는 종이는 목재의 구성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이용한 것이다. 이 물질은 식물 세포벽의 기본적인 구조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유기화합물이다. 이것은 종이의 강도, 부드러운 정도, 질감, 자연적 색상, 흡수성 등을 결정하므로 용도에 따라 적합한 재료 선택이 중요하다.

현재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책의 40% 정도는 다룰 때 상당히 조심해야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책이 훼손되는 원인은 지난 150여 년간 인쇄한 서적은 주로 산성 상태이기 때문이다.

산성지의 수명은 보통 50~100년 정도이다. 19세기부터 산성지로 출판된 종이 자료는 100년이 지난 지금 산성화로 인한 세계지식문화유산의 대량 붕괴로 이어져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15~18세기의 책들은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종이를 아마포 또는 넝마를 소재로 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세기는 책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무 펄프를 이용했다.

그런데 자그마치 1200년 정도 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두루마리 경문은 일부만 닳아 떨어졌을 뿐 아직도 그 형체가 온전하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이 두루마리 종이가 온전한 이유는 닥종이로 만든 한지이기 때문이다.

한지는 산성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중성지의 성격을 띤다. 특히 원료인 닥나무를 알칼리성의 잿물로 표백하고 황촉규(닥풀)이라는 독특한 식물성 풀을 접착제로 사용하므로 한지는 세계적으로도 수명이 오래가기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종이에 잉크가 번지는 것을 방지하고 습기가 더 적게 흡수되도록 펄프 종이를 만들 때 명반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명반의 산성작용으로 종이가 부스러지게 된다. 따라서 종이의 산성을 중화시키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1기압, 117도 정도에서 끓는 아연 금속화합물, 디에틸아연(diethylzinc)을 산소 또는 물과 반응시키면 산화아연이 생성된다. 이 산화아연은 염기성 산화물로 책에 스며들어 종이의 산성을 중화시킨다.

여기서 문제점은 아연 먼지나 디에틸아연이 공기와 접촉하면 자발적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로 질소기체가 채워진 상태에서 산소의 양이 조절되는 공간에서 디에틸아연의 기체를 종이에 스며들게 해야 된다.

디에틸아연의 끓는점을 낮추고, 종이의 각 쪽에 있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탈산처리실의 압력을 1기압 이하로 낮춰서 유지해야 된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탈산처리법이 개발·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탈산작용을 이용한 것은 책의 수명을 3~5배 연장시킬 수 있다. 현재 새로운 디에틸아연의 처리방법은 한 번에 9000권 이상의 책을 중화시킬 수 있는 큰 방도 미국에서 설치된 곳이 있다. 그렇지만 이 방법도 이미 훼손된 책은 복구시킬 수는 없으므로 부식상태가 심한 책은 마이크로필름을 이용해 사진 형태로 저장해야 된다.

펄프 종이 제작 때 이용한 명반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명반은 면류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에 첨가될 수도 있어서 반죽을 부풀리는 베이킹파우더 등의 성분일 수도 있다. 또한 이 물질은 성게알에 보존제로 첨가될 수도 있다.

명반은 천연 염료의 정착을 돕는 성질이 있어 전통 염색이나 봉숭아 물들이기를 할 때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화합물은 지혈효과가 있어서 가벼운 상처의 출혈을 멎게 할 목적으로 고대 로마 이발사도 사용한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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