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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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조그만 텃밭이 생기면서 심고 싶었던 것들 중에 일순위에 해당하는 것을 심으며 작은 농사가 시작되었는데 그중에 호박도 일순위 안에 들었다. 호박을 얻기 위함도 있지만 호박잎을 위해서 심었다고 할 만큼 호박잎쌈과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풀어 끓인 호박잎국, 특히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먹는 호박잎국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맛이다.

호박을 심고 보니 다른 집은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우리 집은 이상하게도 호박꽃은 많이 피어도 호박은 달리지 않았다. 결국 작년에는 호박이 하나도 달리지 않아 종자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올해는 묘종을 사다 심었는데 이상하게도 벌써 호박이 몇 개 달렸다. 씨앗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파종을 잘못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호박이 안 달리면 호박잎만 얻어도 우리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막상 호박이 달리고보니까 마음이 다르다. 혹여 호박이 자라지 않고 떨어져 버릴까봐 남편은 그릇을 가져다 바쳐놓았다. 가만히 보니 꽃이 피었다고 다 호박이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그래 호박꽃도 꽃이냐고 했는데 어디를 보아도 예쁜데 어찌 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꽃이 열매를 맺어야 한다면 열매를 맺지 못함을 두고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중얼거려보았다.

어린 시절 추억의 장면에는 늘 호박이 가까이 있다. 그래서인지 호박을 보면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호박꽃을 보면 친구들이랑 밤에 호박꽃 속에 반딧불을 여러 마리 잡아넣고 서로 누구 것이 더 밝은지 견주며 들고 돌아다녔던 생각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밥 짓다가 뜸들일 쯤 솥에 호박잎을 얹어 쪄서 맛나게 먹을 때마다 난 밥에서 냄새난다고 투정부렸는데 지금은 그 향기가 그리움이다. 설거지를 할 때도 세제가 없는 시절에 호박잎만 있으면 수세미와 세제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요긴한 존재였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호박고지시루떡이 너무 먹고 싶어 한 겨울에 호박고지를 겨우 구해서 들통에 시루떡을 만들어 먹었던 그 꿀맛 같은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아기를 출산하고서 퉁퉁 부은 붓기를 빼기 위해 호박 속에 꿀을 넣고 쪄서 즙을 짜서 보내준 어머니의 정성으로 신통하게도 퉁퉁 부었던 얼굴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던 생각은 늙은 호박만 보면 재생된다.

속담에 호박은 늙을수록 달다라는 말이 있다 노랫말에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익어서 맛이 달면 좋겠다. 그리고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모두 유용하게 쓰여 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그런 맛을 내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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