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휘파람
어머니의 휘파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무학이었지만 어머니는 내게 존엄했다. 사랑과 인고의 화신이었다. 당신에 대한 회상을 소품시로 쓰려 한 게 쓰려니 함축이 힘들어 서사에 기울다가 종내 산문률에 의탁했다.

한여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새벽이슬 내린 들풀을 차며 일찍이 집을 나선 어머니는 조[粟, 조 ‘속’]밭을 매었다. 어느새 해가 한 발 올라오더니 푹푹 찌기 시작한다. 그나마 선선한 아침 기운이 남아 있어 손놀림이 빨랐다. 조는 초벌매기로 빽빽하게 솟아난 어린싹을 알맞은 간격으로 솎는다. 순간순간 뽑을 것과 남길 것을 골라 호미질을 해야 한다. 섣불리 했다 여름 볕에 뿌리가 상하면 바로 말라 죽는다. 경험칙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다. 조밭을 맨다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호기심으로 자원해 나선 길이었지만, 한 시간도 안돼 흐르는 땀에 질려 두 손 들고 말았다. “저 솔밭에 가 좀 쉬어라.” 어머니가 등을 떠미는 게 아닌가. 사랑의 손길이었다.

폭염의 날들. 연일 내리쬐는 잉걸불 같은 햇볕에 스치고 지나는 바람 한 점이 없다. 오랜 가물에 위로 올라오는 복사열에다 호미질로 풀풀 날리는 흙먼지까지 괴롭혔다. 한동안 솔밭 그늘에 앉았다 다시 어머니 곁으로 왔지만 이내 땀이 눈 안으로 흘려들어 앞을 가렸다. 땀이 들어간 눈물이 그렇게 짠 걸 처음 알았다. 어머니 손이 나를 다시 솔밭으로 떠밀었다. 솔밭 오가기를 몇 차례 반복했을 것이다.

가만 보니 대패랭이를 쓴 어머니 머리에서 흐른 땀이 온몸을 흠뻑 적시고 있다. 땀에 젖은 갈적삼이 몸에 찰씩 달라붙었고, 몸빼는 땀에 젖은 흙에 뒤범벅이 돼 있다.

그때다. 놀랄 일이 벌어졌다. “지서멍과 오름엣 돌은 둥글다가도 사를메 난다(조강지처와 오름 위 돌은 뒹굴다가도 살 길이 난다.)” 한소리 뒤, 어머니 입술이 어느결에 휘파람을 불고 있지 않은가. 프휘이이 프휘이이. 솔밭에서 솔가지가 하늘거리더니 우리 앞으로 한 가닥 바람이 왔다. 미풍이었지만 땀에 젖어 어머니 이마에 내린 몇 가닥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의 기운, 기적이었다. 타령 한 소절도 그랬지만, 어머니가 휘파람을 불다니.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지금은 제주가 살고 싶은 곳으로 선망이지만, 옛날엔 지리적으로 본토에 이격된 절해고도인 데다 환경이 사뭇 열악했다. 못 살고 낙후했다. 하지만 우리 제주의 어머니들은 억척스러웠다. 거칠고 메마른 자연에 시종 맞서 땀 흘리면서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켰다.

어머니의 휘파람, 한여름 뙤약볕 아래 김매는데 하도 찌는 더위라,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 숨통을 틔워 준 것 아닐까. 나는 휘파람을 잘 불지만, 그 뒤로 바람이 오지 않는다. 모를 일로 남아 있다.

가슴 쓸어내린다. 어머니의 휘파람, 불볕 속에서 김매던 그 현장을 한 장 사진에 담아뒀더라면 좋았을 걸. 사진이 힘들던 시절이지만, 한 장 있었으면, 아침 첫 햇살 드는 거실 벽에다 시·화로 걸어 놓았으면 좋을 걸. 시와 사진, 두 장르의 접목으로, 크고 작은 액자에 넣되 윗 라인을 가지런히 해서.

늘그막에 어머니를 떠올린다. 연일 폭염경보지만 나는 좀체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뜰에 내려 나무 그늘에 앉아 살랑대는 잎새로 눈을 보낸다. 귓전으로 오는 어머니의 휘파람, 프휘이이 프휘이이. 내성(耐性)이 생긴 것 같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