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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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친구들과 식사 후 느긋하게 보내던 저녁시간. 휴대폰의 알람 소리를 들었다. 얼른 정지시키고 마스크며 휴대폰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서려는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왜 혼자 부산이냐고 물었다. 배도 빵빵해 더는 못 먹겠고, 일어설 시간도 되었다며 궁색한 말을 주워 담다가 이실직고를 했다. TV 드라마 봐야 될 시간이라고 말이다. 별스럽다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음을 강하게 의식했다. 웃기지만 사실이다.

아주 가끔씩 생각지 않은 뭔가에 푹 빠질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상의 즐거움이고 소소한 활력이다. 요즘이 그렇다. 시작부터 재미있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토마토, 기러기, 별똥별, 스위스, 역삼역…’라며 시작되는 주인공의 자기소개, 식상하여 평소 시작과 끝이 같은 글자라는 것을 의식도 못했는데 대사를 들으며 빵 터졌다. TV 드라마에 빠져 본 게 언제인지 기억마저 가물거린다.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내용으로 전개되던 것에서 시청자들을 향해 이 드라마는 발랄하고 발칙한 충격을 건넨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가진 극중 변호사 역할을 맡은 주인공. 미세하고 미려한 부분까지 연기를 멋지게 소화해 내는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료되었다. 극중 변호사인 주인공이 장애를 가짐으로서 일상에서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과 편견에 의한 부자유스러움 등, 전혀 몰랐던 것들을 극에서는 편안하고, 때론 상큼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랜만에 대하는 법정 드라마다. 장면마다 주인공이 연출하는 생경한 동작과 정제되지 않은 채 틈틈이 날리는 시원한 대사, 돌발적 행동과 말의 순수가 청량감으로 다가온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되었고 또, 드물지만 극중 주인공처럼 천재성을 가진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를 보며 방송이 바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면, 무심히 지나칠 뻔한 것들을 재조명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또 공감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즐거움은 덤이다.

얼마 전 바람 한 점 없이 더운 날이었다. 더위도 식힐 겸, 인근 아파트 단지 안, 나무그늘을 찾아 쉬고 있었다. 생각 없이 오느라 몰랐는데 가만히 앉아서 보니 일정 구간별로 의자의 높낮이가 조금씩 달랐다. 특이했다. 언뜻 보면 어른 옆에 아이가 앉도록 배려한 것도 같고, 의자와 의자 사이에 빈 공간인가 싶었는데 다시 의자가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진입로 입구 쪽으로 눈을 돌리니 ‘무장애 벤치’라는 설명과 함께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설명이 있었다. 그것은 ‘성별, 연령,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와 ‘다양한 이용자들이 편안하게 쉬는 쉼터’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아까 본 빈 공간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든 곳이었다. 드라마에 심취된 탓에 관심이 더 큰 걸까.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 가능한 이런 곳이 더 많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지친 마음까지도 정화되는 것 같다. 어떻게 마무리 될지 모르지만 시작이 그렇듯, 신선한 충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중 웃을 일이, 마음 찡한 울림이 기대된다. 기다림마저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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