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 끓고, 푹푹 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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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올여름은 제주가 가물다. 4,5월 고사리마에 비가 없더니 6,7월을 지나며 비다운 비가 없었다. 태풍이 중국 쪽으로 빠지면서 간접 영향으로 이틀간 내린 비가 거의 전부. 감칠맛 나게 7월 말께 비가 왔나. 하도 더운 바람에 이내 기억에서 지워지고 없다.

오늘 인터넷을 뒤적이다 놀라운 사실 앞에 두 번 다시 놀랐다.

‘36.5도, 사람 체온만큼 올라가 제주, 올해 최고기록!’ 대구 서울 등과 최고기온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다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다지 않은가. 기사를 보면서도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제주의 최고기온이 사람 체온만큼 치솟았다는 얘기 아닌가. 기상 관측 시작(1923) 이래 7번째 고온이라고 한다. 33~34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마침내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가파르게 지구를 달구는 모양이다. 유럽 어느 지역에선 40도를 웃돌아 사람들이 더위에 신음한다더니, 이게 남의 일인가. 신음은 시난고난하는 가운데 숨이 꺼져가는 고비에 나오는 고통의 소리다. 그런 불더위가 머잖아 목전에 엄습해 올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신음은 이미 재앙이 아닌가.

그동안 지구를 함부로 해온 인간의 죄업이 예사롭지 않으니 걱정, 걱정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대지에 이마를 대고 입맞춤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어머니인 땅에게, 우리의 그윽한 품인 자연에게 겸허해야 할 것, 이제 당장 실천해야 할 우리의 덕목이 아닌가.

여름 들어 가물에 타는 시간 속에 있었다. 자연 일기예보에 눈이 갔고, 빨갛게 칠해진 섬을 보며 ‘이럴 수가’ 되뇌곤 해왔다. 중부지방은 호우로 물난리를 겪는 판인데, 하느님도 무정하셔라 저 빗줄기를 한두 시간만 이 섬에 끌어다 주실 일이지, 그냥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에 얼마나 목이 탔는지, 산을 오를 때도 이렇게 갈증이 오진 않는다.

연전 읍내 집 작은 공부방에 틀어박힐 때도 틀지 않던 에어컨을 7월 하순에 켰다. 더위를 견디던 내성이 임계에 이르러 있다. 기를 쓰다 잘못(?)될까 봐 더럭 겁나 두 손 들었지 않은가. 아파트 뜰에 무성한 나무들이 완전 무장하고 있는 ‘초록’, 그 푸른색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초록은 두껍고 단단한 색, 활발해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의 빛이다. 올여름처럼 초록을 갈구한 적이 없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여름이 뜨거울 수밖에. 활활 타오르다 밤의 시공을 뒤덮어 오는 열대야의 열기는 견뎌내기 힘든 뜻밖의 형벌이다. 비가 없으면 펄펄 끓는 게 여름의 근성 아닌가.

우연일까. 최고기온을 기록한 것이 8월 8일, 붙여 쓰면 ‘팔팔(88)’이다. 2022년 여름 최고 기온을 고쳐 쓴 8월 8일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기온이 이쯤 되니 팔팔 끓는다. 땅이 끓고 길이 끓고 허공이 끓었다. 팔팔 끓고, 푹푹 찌고. 양은 냄비에서 김이 팍팍 솟고 물이 설설 끓는 것 같다.

투덜대다 창밖을 내다본다. 바람 한 점 없이 무풍한 한낮, 나무들은 꼼짝없이 서 있지 않은가. 가지커녕 이파리 하나 하늘거리지 않는다. 숨은 쉬고 있는가. 땡볕 아래 발을 내린 채 말 한마디 없이 묵연할 뿐.

오늘은 더워서 책 한 줄 읽지 못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날이다. 하지만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9월부터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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