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애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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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화 수필가

지난 대선 기간 중, 어느 후보의 선거운동 차량을 운행하던 버스기사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졌다. 엿새 만에 의식을 찾은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아들에게 밥은 먹었냐?”하는 거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그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끼니를 놓쳤을까봐 밥걱정부터 했다. 그 뉴스를 보며 부모로서의 나, 자식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를 기르면서 애를 태운 적도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무렵 아이를 안고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식에게 좋은 거 하나라도 더 마련해주려고 열심히 살았고, 자식이 보고 있기에 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삶을 끌고 가는 힘은 부모로서의 내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가정형편도 어려운데 내가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말았다. 하늘이 노랬다. 나를 원망할 수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때 내게 너는 될 거다.”라고 했다. 그 짧은 말이 내게 기운을 불어넣었다. 팽팽하던 공도 공기가 빠져나가면 다시 튀어오를 수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래서 자식이 다시 튀어오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자식이란 부모의 속이 썩을 만큼 썩어야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오는 존재인 것 같다. 자식이 언제 꽃을 피울지 기대를 하되, 부모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지켜보았으면 한다. 봄에 피는 꽃 따로 있고 가을에 피는 꽃 따로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새 잎을 부지런히 내고 가지를 늘려가는 것만 해도 잘 하는 거라고 말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부모뿐이다. 부모의 참을성은 자식이 다 길러준다.

부모도 자식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걸 자식들은 알까. 육십 대 이상의 부모를 상대로 자식에게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인지 설문 조사를 했다. 일 순위는 아무래도 용돈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식의 안부전화였다. 사는 게 적적하고 자식이 그립다는 얘기다.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더 이상 자식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 또한 어머니를 너무 외롭게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졌다.

자식이 전화상으로 한번 뵈러 가겠다.”고 하면 부모는 내심 반가우면서도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올 거 없다.”고 잘라 말한다. 마음 따로, 말 따로다. ‘식구들 끌고 먼 길을 오가려면 경비도 많이 들고 몸도 고단할 텐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자식 집에 다니러 갔을 때에도 부모는 자식의 안색부터 살핀다. 표정이 어둡거나 얼굴이 꺼칠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살림이 쪼들리나, 어디 큰 돈 들어갈 데가 생겼나, 어디 투자 했다가 실패를 한 건 아닌가.’ 그래서 돌아올 차비만 남기고 지갑안의 돈을 모두 꺼내주고 온다.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듯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망설임이 없다. 이에 비해 효도는 마음먹고 노력해야 되는 도리. 행여 자식이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하더라도 부모는 그걸 입에 올리지 않는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자식을 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애달픈 관계다.

부모는 자식 돌보기 전선에서 영원히 퇴역하지 않을 노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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