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인수(君舟人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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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군주인수(君舟人水)란 말이 있다. 임금은 배, 백성은 강이라 함이다. 강물은 배를 띄우지만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의미다, 정한 이치다. 이를 상세화하면 재주복주(載舟覆舟). 실을 재, 엎을 복 두 자를 읽으면, 앞뒤의 극명한 대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강물은 배를 실을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성공적 시작에도 경우에 따라선 비극적 종말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으로, 결말이 끔찍하다. 우리 민족의 유전자엔 상대에 대한 동정적 성정(性情)이 분명 있다. 잘 됐으면 하는 측은지심이다.

하지만 지도자를 세울 수도, 물러나게 할 수도 있는 게 백성이다. 나쁘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 선량한 마음이 영혼 속에 깃들어 있다. 고대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고생고생하던 끝에 ‘잘 살았다’로 끝난다. 우여곡절 뒤의 해피엔딩이 우연이 아니다.

망설임 끝에 쓴소리를 하려 한다. 우리는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을 기대와 설렘 속에 최고 통치자로 뽑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걸음걸이,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는 짓의 언어, 소통을 전제한 언론과의 출근길 회견 등 전에 없던 신선감에 박수를 보냈다.

빨리 달아오르면 빨리 식는가. 사이다 같은 청량감만으론 허기를 달래지 못한다. 국민들은 결핍에 휘청거리고 있다. 못 가졌고 못 누린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밑바닥을 훑으며 애면글면 힘겨운 나날을 견뎌내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한숨 잘 날 없는 소상공인과 시장 사람들의 지지리도 찌든 오늘의 삶!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가 어쩌고, 통치 방식이 독단적이네 일방적이네, 국민적 합의도 없이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 시대를 열었네, 또 부수적 사안들을 비판하며 정책이 있네 없네 목소리를 높여도, 저런 스타일의 대통령도 겪어야 된다 했다. 펼쳐질 대통령의 시간을 고대한 것이다. 지지율이 추락해 바닥을 쳐도 설마 했다. 말씀처럼 지지율에 연연치 말자 했다. 한데 대통령은 민심을 읽을 줄 몰랐다.

지난번 폭우에 나라가 휩쓸리는 가파른 재난의 와중에서 보인 대통령의 안일한 대응은 실낱같던 희망마저 놓게 했다. 심히 놀랐던 대목이, 홍수로 서울이 잠기기 시작하던 첫날 밤이다. 대통령께서 10시 퇴근이라니. 묻고 싶다. 당신의 나라 수도가 침수되고, 백성들이 허우적대는 아비규환 속인데 차마 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던가. 뒷말들이 무성했다. 대통령은 자지 않고 새벽 3시까지 자택에서 재난 본부를 지휘했다, 자택은 지하 벙커 수준이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실이다. 지휘에 문제가 비판을 받아도 되는 건지 민망하기 그지없다.

공분을 불러 결국 삭제된 비극의 반지하 방문 카드…. 재난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한데 이건 이 나라의 비애이고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다. 한 줄 소설 같다. 대통령이 몸소 물바다가 된 길 위, 재난의 현장에 섰다면 어땠을까. 백성들이 그냥 있었을까. 말리려고 몰려들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있어야 할 곳을 비워 버렸다.

국민의힘 고문이 한 말은 뼈를 깎는 고언이었다. “물에 잠긴다는데 퇴근하지 말았어야 한다, 펠로시 의장, 만나야 할 분인데 안 만났다.” 비가 온다고 퇴근 안 하냐, 휴가 중이라…. 측근의 설명은 하나같이 치기다.

우리는 대통령을 배에 태웠지만, 강이 너울 치며 노호하고 있다. 달래야 한다. 배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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