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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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희

올봄에도 해바라기 씨앗을 앞뜰에 심었어요. 여름이 되니 해바라기는 살며시 피어났어요. 한 송이가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새 열 송이가 피어나 뜰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해바라기의 화사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읍니다. 머지않아 해바라기는 담담한 모습으로 지면서 씨앗을 남기겠죠.

하지만 올해는 해바라기꽃을 보아도 내 마음은 어둡기만 합니다. 며칠 전, 의사 선생님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어머니, 그동안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더 이상 투석 치료를 멈추고 편히 쉬다 돌아가시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자녀분들 상의하세요.” (…) 멍하니 허공을 바라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수긍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몹시 힘든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온 어머니,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요. 투석할 때마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병실을 나오곤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건강할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하는 후회만 남습니다.

어머니 옷장을 정리합니다. 옷가지에서 어머니 체온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자녀들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돌아가실 때 가져갈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어머니가 싸둔 보따리를 풀어봅니다. 손수 마련해 둔 수의가 장롱 안에서 묵묵히 잠자고 있네요. 장마가 지나면 햇볕 좋은 날 거풍해두렵니다. 어머니 곁에 둘 삼베, 명주… 챙겨둡니다.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앞날을 예견한 듯 쓰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곤 했어요.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깨끗한 항아리를 건네주기도 했지요. 옷이나 물건도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했나 봅니다. 옷장에는 아끼던 옷 몇 가지만 남아있어요. 누군가는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옮겨감이다.”라고 하더군요. 세상 사람 누구나 떠나가는 길이기에 어머니가 꿈꾸던 곳에서 안락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오직 가족을 위해 부처님 앞에서 합장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 손과 내 손을 포개면 국화빵처럼 닮았어요. 작고 못생긴 손이지요. 작은 손이지만 솜씨가 남달랐어요.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입혀주면서 네 남매를 튼튼히 길러준 자랑스러운 손입니다. 어머니가 만든 된장과 김치 맛은 일품이지요. 투병하느라 어머니 손이 굳어버리니 아버지는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며 하소연하듯 푸념합니다. “느네 어멍이 만든 음식 맛이 최고여…” 의좋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했는데 이젠 쓸쓸합니다. 오늘도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갑니다.

어머니!

곁에서 부르면 느낌으로 알아보는 듯합니다. 어머니 손을 잡아봅니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여있고 늙어버린 손이지만, 부지런하고 넉넉한 어머니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스러운 손입니다. 박제된 손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손에서 어머니 일생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엄마 손, 누구에게나 아낌없는 마음을 베풀어 주신 엄마의 손, 존경합니다. 어머니 손맛. 손길, 절에서 합장하는 어머니 두 손을 고이 간직하렵니다.

핏줄이라는 인연을 생각해 봅니다. 선한 핏줄은 슬기로운 열매를 맺지요. 어머니의 분신인 네 남매가 있으니 어머니와의 인연은 오래오래 이어갈 거예요. 믿음과 긍정의 뜰 안에서 따뜻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여, 기여…”*

“열심히 기도하라! 믿음이 너를 지켜줄 거여.”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끊임없이 솟아나 주변을 밝혀줄 거예요. 어머니처럼 나도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읍니다. 크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에 얹어지며 충만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두 손을 모으면 마음이 모이고 성스러운 숨결이 찾아와 고요해집니다.

어머니! 부디…

어머니 손길이 그리운 귤나무도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듯합니다.

*기여: ‘그래’의 제주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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