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글쓰기
건강과 글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건강을’ 그만 잃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어, ‘잃었다’는 완료시제를 쓰게 된다. 이태 전 초여름, 나갔다 들어오는데 갑자기 몸이 한쪽으로 쏠려 주체하기 힘들지 않은가. 아파트 경내에 들어온 때라 정원의 나무에 기대어 한참 몸의 균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당혹했다. 기분이 찝찝해 바로 신경과를 찾았더니, 뜻밖의 진단이 나왔지 않은가.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더니, 의사가 ‘뇌경색’이라 했다. 뇌로 가는 혈관의 일부가 막혀 산소 공급이 차단돼 부분적으로 기관이 괴사하면서 기능이 떨어져 간다는 것. 심하면 반신마비나 뇌출혈이 올 수도 있다며, 의사는 바로 입원하라는 것이다.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공교롭게도 집이 기일이라 했지만 흘려들으며, 의사의 지시는 단호했다.

곧바로 환자복을 입고 침상에 누워 링거를 맞는 신세가 됐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낯설던 거리두기와 마스크에 익숙할 즈음, 때마침 태풍 마이삭이 휩쓸고 지나는 소리를 병실에서 숨죽여 들어야 했다. 고비를 넘겼다.

그 뒤 만 2년 약물치료에 매달려 오지만, 더 악화되지 않으나 별반 진전이 없다. 갑자기 혀가 짧아지면서 심한 언어장애가 찾아와 머릿속이 캄캄해지면서 나는 딴 세상에 있다. 매일 몇 차례 기습해 오는 아뜩한 이 광란의 고비를 맞이해야 한다. 말로만 듣던 몹쓸 괴질이다. 요즘엔 걸음이 비틀거려 바깥출입도 삼가고 있다. 연전, 의사인 작은아들이 지팡이를 사들고 왔지만 당혹스러워 그냥 세워뒀다. 활기찼던 지난 시간들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 만류하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상당히 혼란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걷기운동 뒤에 묵직한 아령을 들었는데,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변화에 속수무책인가 보다. 건강을 잃고 보니, 무슨 방책이 서질 않는다. 하릴없이 아파트 13층에 갇혀 있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루 한 번 흙은 밟아야지!”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아내가 내 왼손을 잡으면 걷기 시작한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도 있는 아파트 둘레길, 나를 위해 낸 길 같아 여간 은혜롭지 않다. 사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감성의 길이다.

“정다워 보여요.” “참 좋네요.” 면식 없는 주민도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온다. 단지에 소문이 난 건 아닌지 모른다. 지나치는 이들마다 정겨운 눈길이다. 걷다 아내와 벤치에 앉아 마주 보며 웃는다. 60년을 함께해 온 사람이다. 더 임의로울 수 없는 생의 반려가 아닌가.

올여름 더위엔 조신해 가면서 가급적 산산한 아침이나 저녁에 걷는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했다. 날씨 좋은 가을이 오면 더 힘을 낼 생각이다.

일이 없으면 시간도 멈춘다. 지루하면 고통스럽다. 행여 머리 맑은 시간에 나는 글을 쓴다. 늙어 할 수 있는 일로 내겐 이만한 게 없다. 운문 산문을 넘나들고 있다. 모처럼 내가 좋은 글을 썼다 싶은 순간, 나를 무릎 치게 하는 카타르시스는 내게 눈물겨운 희열이고 환희다. 쓰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잡념도 수심도 감쪽같이 사라져 없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다.

혹여 ‘아팠다는데 글을 쓰고 있잖아.’ 하는 분께 인사드린다. “안에 박혀 시간이 안 가니 글을 씁니다. 건강을 찾으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