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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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 제주돌문화공원관리소/애월문학회장

우리 집 정원 한구석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사 오면서 기념으로 심어 놓은 것이 이제는 단층집 높이만큼 자랐다. 감나무를 사올 때의 수령이 3년쯤 됐으니 나무의 수령은 이제 19년이 된다.

나무는 항일성 때문으로 담 밖으로 경배하듯이 치우쳐 있어 나무의 모양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감이 하나도 열리지 않아 속상해 했던 적이 있었다. 꽃은 피는 것 같았는데 다 떨어지고 가을이 되니 열린 감이라곤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도 매해 웃자라기만 하니 관리를 잘 못한 탓이라 아내는 핀잔을 준다.

그래서 웃자란 가지를 자르려고 마음먹었다. 감나무는 수확이 끝난 겨울에 잘라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겨울이 오길 기다렸다. 매해 겨울이 오면 계속해서 잘라 주었지만 나무는 이상하게도 봄만 되면 웃자라기만 하여 감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무에 힘이 생기고, 생기가 돋은 다음에야 감이 열리겠지 하며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매해 지켜보니 웃자란 가지에서는 감이 열리지 않고 해 넘은 가지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를 조금 남겨두었더니 다음해 가을, 감 몇 개가 나뭇잎 사이로 서서히 익어가는 것이 아닌가. 기쁜 마음을 뒤로 하고 샛노랗게 익어가길 기다렸다.

비록 몇 개 안되는 감이었지만 첫 수학을 할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부유감이라서 그런지 감 둘레가 어른 주먹보다도 훨씬 컸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것이 여간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감을 따 며칠 놓아두니 말랑말랑한 것이 제법 맛있게 보였다. 한 입 먹어보니 당도도 높고 맛도 좋았다.

푹 익은 감은 숟가락으로 파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술만 떠도 이내 포만감을 느낀다. 감 한 두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뒀더니 가을 내내 직박구리며 까치 같은 녀석들이 찾아와 쪼아 먹는다.

이 녀석들도 질서를 아는지 직박구리가 쪼아 먹을 때는 다른 새는 날아오지 않는다. 직박구리가 자리를 뜨니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쪼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고 어느 정도 먹었다 싶으면 자리를 뜬다. 다른 새들이 쪼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한 것이리라.

점점 감나무가 커가고 감이 하나 둘 열리고, 새들의 감을 쪼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에 얼굴이 붉어진다.

기다림의 미덕도 없이 언제나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성급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만이 온 세상을 차지한 것 마냥 제멋대로 행동했다. 무슨 일이든 욕심을 부렸고, 자기 혼자만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이제부터라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한다.

지난 겨울에 가지치기를 하고, 비료도 주고 관리를 그런대로 했던 터라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감이 많이 열렸다. 꽃도 많이 피고 해서 많이 열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떨어진 감이 많아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견뎌온 감이 대견스럽다.

벌써부터 감이 익어가길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많은 새들이 찾아와 쪼아 먹을 수 있도록 잘 익은 감을 몇 개 더 남겨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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