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여 가벼워도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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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선선함이 건네는 바람의 결이 하도 고와, 가까운 곳에 계절 마중 나가듯 걷다가 들어왔다. 두어 시간 다녀온 길, 계절 냄새가 거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곳곳이 가을 냄새다. 씻고 나와 충전 중이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대화방 질문 여럿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창을 열어 대답을 하고, 또 챙겨 답 하느라 잠시 비운 시간에 비해 곱빼기로 분주했다. 중고시장에 잘 안 쓰는 물건을 올린 후 다녀온 어간의 일이다. 잘 쓰지도 않으면서 아까운 생각에 물건들을 여기저기 쟁여 두었던 것이다. 무료 나눔부터 시작하여 물건 종류의 다양함 만큼이나 가격도 매겼다. 어떤 것은 포장도 안 뜯은 채 보관돼 있고, 어떤 물건은 어디서 받아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건전지만 끼우면 쓸 수 있는 물건들이다.

언젠가 ‘1년을 넘어 한 번도 안 썼다면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이니 정리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며 정리의 달인이라며 소개 후, 방송에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그때만 해도 주부 경력 40년 넘게 보내며 체득한 살림에 대한 깊이를 휘젓는 별 쓸데없는 말이라며 잘라냈던 기억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쩌다 쓰려면 어디서 보긴 했는데 어디 두었는지 몰라 또 구입한 것이 어디 한두 개인가.

때론 신제품인 데다 색깔이 세련돼 보여서, 친구네 갔더니 고급스럽고 샘나서, 요즘 유행하는 패턴이라서, 편리해 보여서 등.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팔랑거리는 귀에 편승하여 휘둘리다 보니 적잖이 세간이 불었다. 애들이 커 그들의 삶을 찾는 바람에 쓸 사람도 없으면서 버리지도 못한 채, 집안은 곳곳에 쌓이고 불어난 것들로 그득하다. 늘 그렇듯 살림이라는 게 그냥 막 버리기도 아깝다.

특히 세간이란 것은 사소해 보여도 단순히 돈과 맞바꾼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소소한 것 하나를 집안에 들일 때도 마음 씀의 크기가 자리해 있고, 혹은 우리 집에 오게 된 연유 등, 물건의 가치보다 장만할 때의 상황들 비중이 더 클 때도 있다. 그래서 사소한 물건에도 애착을 갖고, 쉬 내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라는 말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감 때문인지 뭔가 정리해야 될 언저리에 서 있어서 더 그럴까. 대책 없이 불린 세간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아 때론 머리까지 혼란스럽다. 어쨌건 작고 단순하게 해야 되는 것은 맞다.

어렵던 시절, 절약이 미덕임을 얼마나 많이 강조했던가. 무엇을 절약하라는 것이었는지 몰라도 힘든 삶에서 몸으로 체감하고 익혔던 세대다. 그 깊이가 얼마나 깊던지 뼛속까지 박힌 것 같다. 어느 것도 내치려니 어렵다. 아주 소소한 것부터 덜어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그 덜어내는 작업이 물건이든, 마음이든 더 큰 것을 비우려 할 때, 조금은 홀가분해지기 위한 과정의 하나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요즘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시대라 하지 않는가. 무음인 휴대폰 알림창이 반짝 빛을 발한다. 삼천 원짜리 물건을 사러 온다며 주소를 물어왔다.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냥 버리려면 아까울 텐데 누군가한테 나눌 수 있고 나보단 훨씬 잘 쓸 테니 말이다. 액정에 불이 깜빡거리다 이내 사그라진다. ‘당신 근처에서’라는 말처럼 중고마켓 대화창에 불이 다시 켜졌다. 뭔가 또 덜어낼 수 있어 한결 가벼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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