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며
책장을 정리하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복언, 시인·수필가

어느새 성큼 다가왔는지 가을의 숨소리가 깊다. 몸과 마음을 괴롭히던 무더위도 꼬리를 감추고 나니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서늘한 바람과 마주하노라면 청량음료를 들이켜는 느낌이다.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 감나무도 공중에 홍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했다. 5평쯤 되는 서재의 한쪽 벽면에는 7단 5칸짜리 책장이 기대어 있다. 꽉 채우면 천 권쯤 들어설 자리에 앨범이나 기념패 등의 잡동사니도 놓여 있어서 800권쯤 꽂혔을까 싶다.

사실 나는 독서를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사들인 책도 적었다. 전공이나 취미와 관련된 서적과 장식품처럼 사놓은 전집류를 소장해오다 11년 전 이사하면서 절반은 처분했다. 얼마 안 되는 책들을 새로운 책장에 꽂으니 빈자리가 많아 왠지 빈약했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 평생 반려가 되어줄 글쓰기에 입문하게 되었다. 독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깜냥대로 쓰면 된다며 나를 다독인다. 그러는 새에 고맙게도 지인이나 심지어 낯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시집이나 수필집, 동인지 들을 보내준다. 월간이나 계간 문학지도 5종 정기구독하다 보니 책의 권수가 많이 불었다. 책장의 몇 단에는 책등이 보이지 않게 쌓아놓기만 하여 무슨 책인지 알 수가 없다.

생각 끝에 통나무 다탁 위에 책을 쌓기 시작했다. 제법 높이가 자랐다. 아무래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책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찌어찌 폐지수집가와 연락이 닿아 사정을 말했더니 기꺼이 가져가겠노라 한다. 문제는 어떤 책을 남기고 버리느냐이다. 인문 서적, 그중에도 최근의 문학도서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분량을 헤아리며 남기기로 했다.

삼사십 년 전 큰맘 먹고 샀던 두툼한 사전류를 버리려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오래오래 이용하려던 책들이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에도 못 미치는 세상으로 변하다니. 교직 관련 서적들을 버리려니 지나온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 서운함이 스쳤다. 대학 시절 사놓은 문고판 영어 원서 소설책도 몇 권 있었다. 사전을 뒤지며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여백에 적었던 걸 보며 아련한 과거가 떠올랐다. 이젠 고인이 되신 분들의 자전적 산문집이나 기념문집 들을 버리며 명복을 빌기도 했다.

정리 작업을 하면서 뜻밖의 책을 만나기도 했다. 닐 도날드 월쉬(Neale Donald Walsch)가 쓴 《Conversations with God》 1권을 조경숙 씨가 《신과 나눈 이야기 1》로 옮겨 1999년 아름드리미디어에서 출판한 책이다. 간지의 메모를 보니 큰아들이 2000년 군에서 제대할 때 후배한테서 받은 선물이다. 몇 장 읽노라니 정독해야 할 책임을 알 수 있다. 일부를 읽고 되새김질이 필요한 내용을 몇 줄 요약해 본다.

신은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었다. 그러므로 현재 세상의 모습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결과이다. 인간의 삶은 발견의 과정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내려 애쓰지 말고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판단하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과 상통한다. 항시 긍정적인 생각과 느낌으로 밝게 살아야겠다. 좋은 계절에 책 몇 권 읽으며 마음도 닦으면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