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노역 수탈과 핍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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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근·현대 역사문화 녹아있는 대정
시설 구축 위해 강제노역 동원 등
알뜨르비행장 도민의 피땀 서려
오랜 세월 흘렀지만 원형은 남아 
제주 곳곳 태평양 전쟁 흔적 남아
침략 야욕 불태우며 병력 주둔
알뜨르비행장 함상전투기 ‘제로센’ 모형과 격납고. 섯알오름 학살터 근방에 있는 이 격납고에는 제로센 비행기가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되고 있다.
알뜨르비행장 함상전투기 ‘제로센’ 모형과 격납고. 섯알오름 학살터 근방에 있는 이 격납고에는 제로센 비행기가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되고 있다.

알뜨르비행장 물탱크 받침대와 지하벙커

네 기둥 위에 놓인 물탱크 받침대(혹자는 관제탑이라고도 한다.)’ 위에 올라 제로센이란 함상전투기(零戰·영식함상전투기)가 수시로 이착륙했던 알뜨르비행장을 내려다본다.

조심과 긴장 속에서 안전장치가 없는 물탱크 받침대에 올라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유적지 답사의 한 모습일 것이다.

일제는 제국의 신민을 징용해 총동원 업무에 종사케 할 수 있다.’라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징집병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16세에서 60세까지 징발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12살에서 70살까지로 대상을 확대했다.

알뜨르비행장이 오무라 해군항공대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되면서 잠자리비행기라고 불리는 연습용 비행기인 아카톰보도 배치됐다.

제주도에 오무라 해군항공부대가 주둔하게 되면서부터는 난징과 상하이 등지에 대한 폭격거점이 제주도로 옮겨졌다. 일제가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19378월 선전포고 없이 나가사키 오무라 기지에서 발진해 960를 비행해 난징을 폭격하고 돌아오는 중간기착지로 알뜨르비행장이 활용되기도 했으며 난징이 함락될 때까지 50여 회, 900여 기의 항공기가 수백 t의 폭탄을 투하했다 한다.

알뜨르비행장 물탱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30m 지점에 없는 듯 있는 둔덕 아래에 위치한 지하벙커를 어렵사리 찾아갔다. 벙커 위에는 잔디와 나무들로 위장돼 있어 지금도 여느 둔덕과 같은 지형처럼 보인다.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자그마한 지하벙커 입구가 나타나고 15m 정도의 단단한 시멘트 구조물을 만난다.

나무 데크와 자동점화장치로 정비돼 있는 지하요새를 들여다보며 일제의 전쟁 망상을 떠올린다. 주변에 설치된 만화안내판에는 1926년부터 알뜨르비행장을 확장하면서 지하벙커도 지어졌다 한다. 적의 포탄 공격에 대비해 지어진 구조물은 지은 지 100년 가까운 지금에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반지하 형태로 지은 구조물 도처에는 채광시설도 돼 있다. 이 지하벙커는 비행대 지휘소 또는 통신시설 등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뜨르비행장 격납고와 제로센 모형 전투기

알뜨르비행장에는 일본군이 전투기를 숨겨놓으려 콘크리트로 지어진 격납고들이 원형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아치형 지붕은 천장 부근인 가운데가 높고 날개 부분은 낮은 형태이며 잔디를 입혀 위장한 모습이다. 이곳에 산재한 격납고 수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든 전체 격납고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격납고 곁에 세워진 안내판에 의하면 1937년 건립된 이 격납고는 등록문화재(39), 정식명칭은 남제주비행기격납고로 돼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전투기 격납고인 이 시설은 당시 20기가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 1기는 잔해만 남아 있다.

섯알오름 학살터 근방에 있는 이 격납고에는 제로센 비행기가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되고 있다. 알뜨르에 산재한 격납고들은 1944년 미군의 일본본토 침공에 대비해 계획된 일제의 본토방어계획 중 7작전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곳에 전시된 모형 전투기는 태평양전쟁 기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군의 전투기인 제로센을 실물 크기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2010년 경술국치 100년 기획 출품작으로 제작됐다.

 

섯알(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와 거대한 지하 갱도진지

송악산 서북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섯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에 서면 최남단 마라도와 주변 바다가 이내 내려다보인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 이런 전쟁 유적이 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일본군은 알뜨르비행장을 건설하면서 미군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으로 대공포 진지도 구축했던 것이다. 원형으로 시멘트와 철근으로 축조된 진지 두 곳에 고사포를 설치했으며 안쪽 벽 8개소에는 탄약을 숨길 수 있는 시설도 갖췄다. 또한 섯알오름 지하에는 거대한 갱도진지도 숨어있었다.

섯알오름은 송이로 뒤덮여 있어 곡괭이로도 지하의 흙을 파낼 수 있는 곳이다. 지하 갱도진지 규모는 57000평방미터로, 일본에서 가장 큰 군사시설로 알려진 마츠시로 대본영의 지하시설(32000평방미터)보다 큰 규모라 한다.

섯알오름 갱도진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은 끝났다. 지금도 고르지 않은 바닥 여러 곳에 흙더미가 쌓여 있으며 시멘트로 마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갱도진지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주도는 아치형 철골 구조물을 갱도에 설치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7호 작전으로 일제가 구축한 자살 특공진지와 전투비행장

패전 기운이 짙게 드리우던 19452, 일본방위총사령관은 미군과의 일본본토 결전에 대비해 육해군 결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전군에 내렸다. 그중 하나가 제주도에서의 방어 개념인 결()7호 작전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은 본토 6개 지역과 일본의 외부 지역으로는 유일하게 제주도 등 7개 지역에서의 결호작전을 준비했다. 제주도에서의 군사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급히 신설되고 75000여 명의 병력이 제주도로 이동해 주둔했다.

알뜨르비행장을 구축했던 일본해군은 1944년 말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한 후 제주도 해안가에 해군특공시설을 구축하며 결7호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귀포 삼매봉과 성산 일출봉·고산 수월봉·모슬포 송악산·함덕 서우봉 등 5개 지역에 자살 특공기지들을 구축했고 일본해군과 경쟁하듯 일본육군도 1943년부터 신촌 진드르에 육군동비행장을 짓고 있었다.

원당봉 갱도진지는 진드르비행장을 경비하기 위해 구축됐다. 그리고 1944년 지금의 제주국제공항 자리에 정뜨르 비행장을 구축했다. 특히 19454월 해안지대에 건설되던 비행장들이 연합군에게 노출되었다고 판단한 일본군 지휘부는 건설 중이던 진드르비행장 공사를 중지하고, 지금의 정석비행장인 교래리 지경에 특공부대용 비행장 건설을 시작했다.

서귀포 1호광장 주변에도 비행장이 조성됐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지금의 서귀포시 중앙로터리에 동서남북으로 활주로가 있었다고 하는 비행장은 해방 후 광장과 목장 등으로 사용됐으며 남제주군 체육대회등이 활주로에서 열리기도 했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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