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먹거리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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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냉면 사리를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살얼음이 낀 육수를 부었다. 상큼한 오이 송송 썰어 얹고, 삶은 달걀에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를 듬뿍 넣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자 갈증 나던 속이 시원하게 가라앉았다. ‘역시 여름은 물냉면이 최고지.’ 늘어졌던 기운이 힘을 얻는다.

계절 음식으로 여름이 되면 냉면을 즐겨 먹는다. 서울에 가면 오장동 함흥 회냉면이 빠질 수 없다. 친정 식구들과 어울려 오랜만의 회포를 풀곤 한다. 올여름에는 더위를 견디지 못해 물냉면을 주로 먹었다. 불볕더위로 음식점에 나가는 것도 고역이다. 동생이 완제품으로 나오는 식품 전문기업 냉면이 맛있다기에 긴가민가했다. 물냉면의 꽃은 육수인데 어설프게 내놓는 냉면집 맛보다 나았다. 가성비도 썩 좋다. 점심 대용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즐겼다.

추석을 전후로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 겁난다. 한꺼번에 사다 냉동실을 채우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텅 비었던 냉동실이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내 속내 더부룩한 것처럼 불편하다. 이제는 절약하자는 생각이 들어 무엇이 있나 뒤적거리곤 한다. 냉동실을 파먹고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주부에겐 여름철 주방일이 더 힘들다. 불 앞에서 흐르는 땀과 씨름해야 하고, 애써 만든 음식도 더위로 입맛 변덕이 심해 젓가락이 외면당하기 일쑤다. 가끔 바람도 쐴 겸 유명 맛집을 찾아간다. 맛집이라고 다 입에 맞는 건 아니다. 별미란 따로 없다. 무엇이든 내가 맛있게 먹어야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유행처럼 떠도는 영양가가 높아,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먹거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맛있게 먹으면 곧 보약이라 생각하고 있다.

요즈음 완제품 식품이 다양하게 나온다. 구태여 주방에서 주부들이 지지고 볶는 요리로 생고생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 찬처럼 거부감이 없어 식구가 적은 집에선 식품값이 덜 든다. 신세대 주부들이 맞벌이로 부엌일을 덜 수 있어, 웬만하면 사 먹는다는 게 공감이 간다. 온라인이나 배달앱으로 주문을 해 시간을 절약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선호한다. 식탁 차림도 과거의 밥상과 사뭇 다르다. 퓨전 요리와 국적을 넘나드는 음식 맛에 이미 익숙해 있다. 신세대의 먹거리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다.

마트 매장 판매대에 갖가지 반찬이 먹음직하게 만들어 진열돼 있다. 나이 든 사람은 망설일 수 있지만, 내 반찬만 고집하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살아야 한다. 이젠 복잡하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손의 수고를 덜며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양을 적게 해도 두 식구 살림에 노상 냉장고에 들락거리는 게 찬이다. 아까워 버릴 수가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사다 먹거나 집에서 하는 것에 별 차이가 없다. 낭비가 적은 쪽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아침밥을 밖에서 해결하는 시절이 곧 올 것 같다. 실제로 대도시에선 새벽에 문 앞에 배달된 음식으로, 아침밥을 해결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이 적잖다.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아침 출근 시간대를 겨냥한 간편식이 1조 원대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간다고 한다. 이러다간 우리의 전통 식탁 차림인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주방일이 슬그머니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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