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거는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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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사노라면’ 필진 정복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내게 거는 주술》을 냈다. 제1집 《사유의 변곡점, 2020》을 낸 지 불과 2년 만의 상재다. 시단에 이름을 올린 게 2016년으로 일천하다. 그새 시집 두 권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2017년 수필가로 등단해 수필집 《살아가라 하네》와 《뜰에서 삶을 캐다》를 냈으니, 그 어간 운문과 산문을 넘나들며 4권의 작품집을 내놓는 경이로운 작업을 완수했다. 가마처럼 타오르는 창작욕에 앞섶을 여미게 한다.

동인으로 문학을 함께하면서 그의 문학에 대한 집념과 치열성을 익히 아는 필자로서 그냥 간과할 수 없어, 독자와 그의 시를 공유하기로 했다. 워낙 시업이 올찬 데다 공감의 결이 묵직해, 시집에 실려있는 68편의 시 가운데 표제작 <내게 거는 주술> 한 편에 그침을 못내 아쉬워한다.

호수에 안긴 하늘 미안한 얼굴 보시고/ 늙은 가지에 안긴 새들의 미소도 보시게/ 이승의 한낮은 육탈을 예언하는 시간/ 지는 꽃의 순한 유서를 읽으시고/ 착한 나무 선 채로 기도하는/ 천년의 세월을 가늠해 보시게/ 슬픔이 기쁨을 호출하는 삶의 쳇바퀴/ 알 듯 말 듯 오름은 능선을 이루고/ 날것들의 생피를 안타까워하는/ 녹음 짙은 계곡의 탄식을 들어보시게/ 가을날 은행잎 쏟아지는 사랑의 허망을/ 심장으로 느끼며/ 잠들지 않고 부르는 시간의 자장가에/ 곤히 잠들어 보시게/ 투박하고 성긴 나의 시는 흙의 거름으로 쓰시게/ 혹시 움트는 싹이 손 내밀거든 후하게 덮어 주시고/ 땅이 메마르기 전 물도 뿌려 주시게/ 사는 게 그런 거라고 속된 말을 거두시고/ 바닥에 무릎 꿇고 천지 더럽힌 입 참회하시게-<내게로 거는 주술> 전문

시집의 표제작이다

초자연적 존재나 절대자인 신에게 경도되지 않고, 제목 그대로 ‘내게 거는 주술’이다. ‘~하시게’의 점잖은 명령종결형이 여덟아홉 번(연결형어미 ‘~고’로 나열된 것 포함) 반복되면서 간원(懇願)하는 바 자신에게 주는 주술이 처연하게 이어진다. 메시지가 점층적으로 심화하는가 싶더니, 그 울림 또한 강렬해 가는 기법에 하중이 실렸다. 자연, 눈이 따라간다.

주술의 대상이 ‘하늘 얼굴, 새들의 미소, 지는 꽃의 유서, 천년의 세월, 계곡의 탄식, 잠들지 않고 부르는 시간 속의 잠, 내 시를 흙의 거름으로 쓰길, 움트는 싹을 덮어 주길, 땅에 물을 뿌려 주길, 속된 말 거두기, 천지 더럽힌 일의 참회’에 이르고 있다. 가시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혼재해 흐르다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화자의 주술이 한 층위 크고 높고 넓게 포괄하면서 ‘참회’에 멎고 있다. ‘바닥에 무릎 꿇고 천지 더럽힌 일’에 대한 참회다. 표제작의 키워드답게 포괄적이다.

시의 행간으로 화자의 간절한 기도가 내리고 있다.-김길웅의 작품 해설 <시적 변용과 추상의 형상화> 중에서

시간을 치고 올라온 정복언 시인은 이제, 그가 그토록 희구하던 시의 한복판을 점령했다. 풀이 무성하니 잡풀 무더기에 갇히지 않게 삼가서, 지금 이대로 하면 좋을 것이다. 시는 결국 인간에 귀속된다. 언어조직으로서의 시가 아닌, 인간의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정복언 시인의 시는 시적 변용과 추상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변용과 형상화, 이는 마치 고열을 견뎌내 청자의 비색을 빚는 바람과 불의 이중주를 연상케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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