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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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오일장엘 갔다. 입구에서 엿장수 각설이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가위질한다. 가위하나로 흥겨운 장단이 다 이루어진다. 멋진 악기라며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았다. 그 가위질 소리에 소년 시절 엿장수도 소환해 낸다.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리면 너도나도 냄비, 고무신, 고철, 종이 뭐든 헌 것을 들고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달콤한 엿은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궁금했다. 너무 낡아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받아다 뭘 하는지. 중학생이 되고서야 재생품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쓸모없을 것 같은 것도 필요한 곳이 있음을 알고 자원의 소중함을 알았다. 다 쓰고 난 볼펜이나 몽당연필도 모아두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당 한구석에 고철, 플라스틱을 모아두고, 창고엔 보고 난 신문이나 헌책이 오랜 시간 묵혀 있다. 일 년쯤 모아 두었다가 고물을 수거하는 사람에게 가져가라고 하면 과일상자를 들고 와 고맙다 인사치레하기도 한다.

법인 건물을 짓고 난 후라 고철이 두어 트럭은 될 듯했다. 너무 많아서 그냥 고물 장수에게 줘버리기엔 아까웠다. 마침 K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특산품을 생산하는 협회의 법인 건물에서 공예품을 만드는 직원이다.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지만 사람이 정직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 날 형님처럼 대하니 내 사람은 아니나 가끔 필요한 일손을 빌려 쓰기도 했다.

백만 원쯤 될 고물 값을 그에게 추석 선물로 주고 싶었다. 고철을 처리해서 용돈이나 만들어 쓰라 했다. 트럭도 가지고 있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 깨끗이 정리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내 짧았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고물을 수집하는 사람에게 주세요. 어렵게 사는 그 사람들의 수입을 제가 차지한다는 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제주 시내에 꼬마빌딩을 가졌다는 영감님이 떠오른다. 환경교육지도자들이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일행과 차를 타고 번화가를 지나는데 꼬마빌딩 앞에 어울리지 않게 고물을 수집하는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근처에 산다는 동료가 전하는 말이다.

“저 빌딩 주인이 저 고물 수집 차 주인인데 그 영감님은 무척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폐지를 모아 내다 팔고 건물을 관리하며 잠시도 쉬지 않지요. 그의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소리가 주변에서 자자하답니다. 탄탄한 알부자지요.”

언뜻 K가 떠올라 반문했다.

“그 정도 부를 축적했으면 어렵게 폐지를 줍는 사람을 생각해서 이젠 그만두어야지요. 그 영감님이 트럭으로 잽싸게 수집해 버리면 손수레나 유모차로 폐지를 모으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보다 더 힘겹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전하며 K와 영감님을 비교해 본다. 누가 더 바람직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인지. 누가 이 세상을 살다 저세상으로 가는 순간 후회 없다 할지. 재산이 많은 부자보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잘것없는 내 삶도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엿을 한 봉지 샀다. 입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과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늙고 낡아간다. 몸은 늙어도 생각은 항상 따뜻한 사람, 버려지는 고물이라지만 배곯은 누군가에겐 허기를 달래줄 밥 한 끼니 되어주는 가치 있는 것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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